다섯 번째 이야기
또 다른 해가 찾아왔다. 여전히 코로나는 난리 치며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우리는 익숙해져 있었다. 그리고 교회도 갈 수 있었다. 어딜 가든 마스크와 함께하는 시기였다.
내가 번역을 하고 싶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시는지…? 그런 생각을 여전히 갖고 있던 어느 날, 엄마가 번역 한 번 해보려 하느냐고 물어보셨다. 고전 교육에 관한 내용의 영어책을 팀을 꾸려 함께 번역하는 프로젝트였다. 연령 제한은 없었지만, 번역 팀의 수장 선생님께 한번 테스트받고 함께 번역하게 되었다. 난 그때 라틴어 수업을 다 듣고 졸업한 상태였는데, 고전 교육책인지라 라틴어에 관한 내용도 곳곳에 들어 있어 그런 부분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렇게 난 팀의 막내로서 함께 번역하게 되었다.
번역된 책을 읽으면 번역을 왜 이렇게 못했냐 어쨌냐 얘기할 때가 많았지만 그때 이후로는 잘 안 하게 된다.(진짜 내가 해도 그것보다는 잘할 것 같은 경우에는 한 마디 정도 하기는 한다. ^^;) 할 수가 없다. 문맥, 단어, 뜻 시대 배경도 봐야 하는 건 둘째 치고 뜻은 이해가 되는데 한국말로 설명이 안 된다. 뜻은 원본과 일맥상통해야 하지만 한국말로 맛깔나게 표현하는 방법을 찾기가 어렵다.
주어지 분량을 기한 내에 마무리하려고 늦게까지 못 자고, 자기가 그렇게 하기로 선택한 거면서 엄마랑 언니한테 짜증 내고. 귀중한 경험도 쌓고 내 여러 못된 성격도 고쳐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난 이때의 이 경험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 이후로 글을 읽을 때는 맞춤법을 매의 눈으로 보면서 읽고, 글을 표현할 때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는 습관도 생겼다. 작가 지망생으로서 나쁘지 않은 습관이다. 그리고 이때의 번역 경험을 되살려 컴패션에서 아이들이 후원자님께 보내는 편지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봉사 활동도 하고 있다. 올해 초부터 시작했고, 이제 벌써 2기수 차다. (번역 고수가 됐다는 건 자랑 아님!) 번역은 하면 할수록 계속해서 더 좋은 단어, 더 좋은 표현을 찾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나는 남에게 의존하는 성향이 좀 있어서 엄마나 언니에게 항상 모든 걸 물어보고 하곤 했다. 그때 번역을 하면서 깨달은 건 언니나 엄마의 말이 항상 옳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사실 엄마랑 언니는 그 책을 영어로 읽어본 것도 아닌데 번역을 다 하고 나서 왜 엄마나 언니에게 확인받겠다고 난리를 쳤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좀 이상하긴 하다. 나름대로 두 분 다 도와주려 애썼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가 없었다. 원래 뜻을 모르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의 투박한 번역을 보며 이상하다고 너무 어렵다고 하며 의역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지만. (초기 단계라 직역부터 해야 하는 때였다.)그 말을 듣고 그냥 문서를 제출한 나는 피드백에 빨간 글씨가 가득한 걸 보고는 잘 안 물어보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글을 쓸 때나 내가 주체가 되어 하는 프로젝트, 내가 잘 알고 내가 조사를 많이 해놓아서 꽤 아는 게 많은 분야에서는 남의 의견을 잘 물어보지 않게 되었다. 그럴 때는 남의 말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내가 배우고 알고 나서 선택한 방향으로 가는 게 맞으니까.
어쨌든 엄마, 언니, 그때 저의 그 많은 짜증 다 받아줘서 고마워요:)
처음에는 고됐지만, 하다 보니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내가 번역한 걸 보면 괜스레 뿌듯해졌다. 그리고 이 번역 프로젝트가 내가 공부하고 배운 것을 토대로 결과를 낸 첫 산물이었기 때문에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내가 선생님들과 함께 번역한 그 책은 제본되어 우리 집 책장에 자랑스럽게 꽂혀 있다. 바라볼 때마다 나의 고생과 번역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서의 기쁨이 함께 생각난다. 커서 피터 윔지 경 시리즈도 꼭 번역하겠다는 생각도 다시 다지면서 말이다.
번역을 하는 시간 동안 함께 번역하는 선생님들과 나눔하고 얘기하던 것도 즐거웠다. 저와 함께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파이팅!
여전히 코로나가 한창이었기 때문에 가족끼리 놀 수밖에 없었다. 여름에 아빠는 거의 일주일 가까이 휴가를 내셨다. 우리는 대형마트에 가서 일주일 치 장을 봐와서 맛있는 걸 해 먹고 영화관 가서 영화 보고 집에서도 영화 보고, 드라마 보고 뽑기로 마니또를 정해서 서로에게 선물해주기도 하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도쿄 올림픽도 보면서 기쁨의 함성을 지르기도 했다. 보드게임을 해서 왕중왕전도 했다! 엄마가 우승하시고 우리 다 푸짐한 상을 받고 기뻐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 휴가는 내가 기억하는 휴가 중 손에 꼽는 휴가 기간이었다. 진짜 재밌었다.
아, 그리고 우리의 독서 모임. (이름하여 코너스톤 독서 모임이다.)지금은 주말에 다들 너무 바빠 시간이 없어서 독서 모임은 연초 빼고는 한 번도 못 해 봤지만 우린 함께 책을 열심히 읽었었다. 독서 모임 회장이었던 나는 열심히 공지글을 집 벽에 붙여 놓았고 독서 모임 회장의 권력(?)을 남용하여 우리 가족들이 다 <반지의 제왕>을 읽게 만들기도 했다. 서로 자기 생각을 나누는 시간은 항상 많았지만, 책에 대해서 얘기하고 책을 읽으면 든 생각을 가족끼리 나누는 건 또 다른 경험이었기에 난 시간만 된다면 다시 독서 모임을 시작하고 싶다. 쉽지 않겠지만;;;
<우리 독서 모임 책 리스트>
반지의 제왕, 어린 왕자,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오만과 편견, 십자가에서 살아난 가정, 오뒷세이아, 길가메시 서사시, 호빗, 천국과 지옥의 이혼, 나니아 연대기, 순전한 기독교, 윌리엄 캐리, 하얼빈, 거룩한 전쟁.... (순서는 시간 순서와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이때부터 하고 싶은 걸 꿈꾸고 기회가 찾아오면 그 꾼 꿈을 현실에 펼칠 수 있다는 걸 내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꾸준히 공부해 온 영어 실력이 이런 곳에 사용되기도 하고 한번 도전한 걸 끝까지 하니 새로운 기대와 꿈이 생겼다. (그래서 우리 엄마 아빠가 항상 뭐든지 시작하면 끝까지 하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하셨나 보다.)
아득하게 느껴졌던 2021년의 일들이 이렇게 적고 보니 지금과 너무 가깝게 느껴진다. 이 일들을 통해 지금의 내가 있고 이 일들로 내가 원동력을 얻으니 말이다. 그때는 이 일 하나로도 참 뿌듯하고 행복했지만, 그 앞에는 정말 많은 선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2022년에는 내가 생각해도 정말 대단한 일들이 우수수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