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이야기
코로나가 조금씩 수그러들고 있었다. 2021년 말, 우리는 우리 집 근처로 이사 온 공식적 이름으로 불리는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라는 곳에 갔다. 우리끼리는 모두 “꿈드림”이라고 부른다. (참고로 학교 밖 청소년이란 공립학교에 다니지 않는 만 9세~24세의 모든 청소년을 의미한다! 대안학교 학생, 자퇴한 청소년, 홈스쿨러, 등등 모두 포함되어 있음.)그 센터에 등록을 하고 2022년 새로운 해가 찾아오자 꿈드림에서 우리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다양한 걸 배우는 걸로 시작했다. 제과 제빵, 체육 멘토링, 인문학 멘토링, 청소년단…. 제과 제빵은 일주일마다 한 번씩 가서 쿠키나 머핀, 케이크 등등 다양한 빵들을 만들어 왔다. 체육 멘토링에서는 학교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기에 (교회에서 친구들과 하긴 했다)자주 할 수 없었던, 친구들과 함께하는 체육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인문학 멘토링은…. 내 인생 멘토링이었다.(뭐 딱히 많이 해보진 않았지만.) 인문학 멘토링의 멘토 선생님은 극작가 선생님이셨고, 작가가 될까 말까 고민하고 있던 내가 확신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진짜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 내가 나가려고 했던 공모전을 준비할 때 시간도 많이 내어가면서 도와주셨다. 아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못 본 지 1년이 되어 간다. 뵙고 싶다. 작년의 고민이 끝났는데 또다시 새로운 고민이 생겨서 그 고민들을 한 아름 앉고 말이다.
청소년단 활동은 매우 새로우면서 재밌는 활동이었다. 청소년단이란 학교 밖 청소년의 의견을 수렴하여 주도적으로 각 시의 대표가 함께 모여 활동하고 학교 밖 청소년의 의견 수렴, 욕구 파악 후 정책 제안을 하고, 캠페인 등을 통해 인식 개선을 하는 자치 기구이다. 나는 정책참여분과에 속해 있었다. (지금도 활동 중이다. 1년까지 연임할 수 있다. 난 의왕시의 당당한 학교 밖 청소년 대표!)
새로운 친구들도 만나고 함께 회의하고 정책제안서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진짜 소중한 경험이었다. 내 MBTI도 “정의로운 사회운동가”라서 사회 제도를 개선하고 싶었던 적이 많았었다. 청소년단을 통해 직접 내 욕구를 해소할 수 있어 아주 보람차고 내 숨통을 틔워 주는 활동이었다! 모두가 함께 살기에 더 좋은, 더 행복한 대한민국을 꿈꾸며 이루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우리 청소년단을 응원해주시길!
그리고 이 모든 게 시작되기 전, 난 중졸 검정고시를 보았다. (꿈드림은 1학기, 2학기의 시작이 거의 4월, 8월 검정고시를 보고 난 후에 시작한다) 검정고시 전날, 난 회의를 하러 갔다.
경기도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에서 여러 센터장님들이 한데 모여 회의하시는 데 함께 참석하러 갔다. 학교 밖 청소년들이 함께 그분들과 모여 회의하면 더 실질적 방안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함께 회의할 3명(나 포함)의 청소년을 부르신 것이었다. 가보니 다 나보다 언니였다. 처음에는 살짝 쫄았지만, 심호흡을 하고, 시작하기 전에 조용히 기도하고, 내가 생각해온 지원 정책들을 말씀드리기 시작했다.
어른들과 대화하는 것은 많이 해보았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모두가 내 말에 집중해서 들어주고 계시는데 무서워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돌발 질문도 꽤 많은 생황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지금까지 읽어온 책이나 생각해왔던 문제, 쓴 글과 관련된 것이 많이 있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 한 생각이 떠올라 그 속을 꽉 채웠다. “아, 홈스쿨링하기 잘했다.”
사람들은 지금의 나를 보면 내가 다 잘하는 줄 안다. 나의 흑역사나 성장 과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누구나 처음 하는 것은 다 서툴지 않은가? 나도 그랬지만 점점 성장한 것이었다. 성장한 나의 모습은 나도 알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내가 항상 얘기하는 것이 있다. 학교 다니는 애들은 결과가 즉시 나온다고. 시험, 여러 대외 활동, 등등등…. 어쨌든 밖에서 하는 게 많으니까. 만날 하는 게 이것들이다. 열심히 하면 결과가 잘 나오고, 그럼 칭찬을 받고 자랑할 거리가 생기는 거다. 난 학교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부러웠다.
자랑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학교 다니는 친구들의 삶이 부럽지도 않았고, 학교 다니는 삶에 딱히 흥미가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보여주고 싶었다. 인정받고 싶었다.(내 인정 욕구가 좀 강하다는 건 염두에 두셔야 한다) 홈스쿨링해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홈스쿨링이 그냥 아무나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놀기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학교 다니는 청소년들 못지않게 잘한다는 거,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고, 보여주고 싶었다.
회의가 끝나자 한 팀장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어쩜 그렇게 말을 잘하니?” 집에 가기 전에 화장실에서 함께 회의한 한 언니도 만났는데 칭찬해주셨다. 엄마를 만나 버스를 타고 오면서 말씀드렸다. “엄마, 홈스쿨링하기 잘한 것 같아요.”
나의 소리 없는 공부들, 책 읽고, 책 읽고 든 생각을 글로 써내고, 독서록 쓰고, 영어 공부하고, 꾸준히 수학, 과학을 공부하고…. 누가 뭐라 하든 계속해서 파온 나의 우물들에서 물이 펑펑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무슨 과목 잘하느냐고 물을 때에 좋아하는 것밖에 얘기할 수밖에 없었고, 잘하는 걸 얘기할 때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악기나 내 객관적 견지에서만 얘기할 수밖에 없었던 나의 설움을 누가 알까?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것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하나의 열매로 맺혀질 때의 벅참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제발, 제발…. 시험 성적으로든, 어떤 것으로든, 밖에 보이는 결과, 그 모습들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결과가 항상 좋을 수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 뒤로도 열매는 계속해서 맺혔다. 줄줄이.
5월에 난 꿈참시라는 팀 활동을 시작했다. 함께 의왕시정책제안대회에 나가는 걸 목표로 하고 정책 제안서를 작성하고 그 정책을 발표하는 팀이었다. 이 대회는 예선 통과 후 본선에 진출하면 정책 제안 내용을 발표하고 결국 마지막에는 실현 가능성을 고려하여 실현할 수 있는 정책을(등수 상관없이) 실현해주는 대회였다. 청소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듣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지원 정책을 더 마련하겠다는 취지도 있었던 것 같다.
팀원은 3명이었고 난 막내였다. 청소년단에서 정책참여분과에 속해 있었고 정책 제안서 쓰는 방법을 더 체계적으로 알려준다고 했기에 일거양득인 것 같아 열심히 하려고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그런데 워낙 장기 프로젝트기도 했고 (5월~10월) 서로 간의 삐걱거리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힘들었다. 그래도 결과는 최우수상을 받았고, (히히) 유익한 점이 무척 많았다는 점을 콕 짚어두고 싶다.
최우수상을 받아 무척 뿌듯했다. 올해 청소년단 활동하는데 정책 제안서에 거의 손댈 게 없다고 선생님께 칭찬받았다. 정책 제안서를 작성하는 게 더 수월해졌다! 팀 활동할 때는 감정보다 이성이 더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이때 발표를 어떻게 하면 좋고 어떻게 PPT를 만들고 구성을 짜면 좋을지에 대해 고만하다가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읽고, 그 책에서 배운 팁들을 여러 상황 때 사용하고 있다. (처음 들어가는 부분에서 흥미 유발, PPT 만들 때는 깔끔하게, 글은 적게….) 정책 제안서 폼은 어딜 가나 대외 활동을 할 때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양식이라 그런 글을 써야 할 때는 그 경험을 아주 잘 써먹고 있다.
1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2022년은 열매를 맺는 해였다고 난 항상 말한다. 내가 16년 동안 해온 모든 것들이, 그 축적된 모든 공부와 경험들이 한순간에 펑 터져 나오는 때였다. 행복했고, 뿌듯했다. 그러나 그래서 그랬는지 다음 해가 조금 두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