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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to the World Sep 17. 2023

17살, 난 홈스쿨링 하는 중

일곱 번째 이야기

2022년에는 너무 많은 걸 경험했고 너무 많은 걸 잘해 냈다. 내가 잘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지만 내가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도 됐다.      


그리고 고등학생의 나이에 접어드는 연도가 딱 올해였다. 모두가 입시를 준비하는 때. 그러나 내 생각은 명확했다. “고1을 행복하게 보내자!” 올해 나의 계획은 뚜렷하게 잡혔다. 수능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1년 내로 많이 해놓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올해 4월에 검정고시를 봐서 고등학교 졸업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무리했다. 난 여유롭게 집에서 다양한 책을 읽을 것이었다. 역시…. 사람 뜻대로 되는 건 없다.     


꿈드림 프로그램에 재밌어 보이는 게 너무 많아서 너무 많이 신청해버린 것이었다. 이건 내 잘못이 한 턱 했지만. 나도 어쩌면 집에서만 틀어박혀 있고 싶었던 것 같지는 않고, 그냥 좀 두려웠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것이지만 다시 조용히 있기가, 매우 좋은 결과를 낸 작년에 비해 아무런 결과를, 나 자신이 보기에 흡족한 결과를 내지 못할까 봐. 그래서 그런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도 하면서 공부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큰 오산이었고, 교만이었다.     


1학기를 그렇게 보내고 나서는 자제하고 있다. 나도 내 시간이 필요하고, 그게 중요하니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하고 싶은 걸 하는 걸지라도 먼저 내 우선순위, 계획, 체력 확인 후에 정해야 한다는 걸!     


그리고 그렇게 마음 졸이며 두려워하고 있던 나는 깨닫게 되었다. 괜찮다는 것을. “네가 15년 동안 공부하고 쌓아 온 게 그 16년째 해에 '팡'하고 터진 거잖아. 하나의 열매를 맺는 데 15년이 걸렸다면, 또다시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더 짧게 걸릴 수도, 길게 걸릴 수도 있지만, 네가 직접 봤잖아. 어쨌든 열매는 열린다는 걸.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준비의 시간을 두려워하지 말자. 지금까지 해 온 것이고,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준비하다 보면 나에게 찾아오는 또 다른 선물이 있겠지.” (주어가 자주 바뀌어도 헷갈리지 마시길. 난 자주 나에게 “너”라고 말한다. 혼자 자주 대화하는 습관이 있어서;;;)     


항상 힘들 때마다 힘을 주는 내 친구, 책은 여전히 아름다운 말을 싣고 와서 내게 속삭여주었다. 난 이 시를 읽으면서 위와 같은 깨달음이 더 굳어지고 확신을 갖게 되었다. 나에게 감격, 감동, 기쁨, 감사, 슬픔, 깨달음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나의 소중한 시.     



“길은 끝없이 이어지네,

바위 위로 나무 아래로,

햇빛이 비치지 않는 동굴 옆으로,

바다에 이르지 못하는 개울 옆으로,

겨울이 뿌린 눈을 넘어,

6월의 즐거운 꽃들 사이로,

풀밭을 넘어 돌멩이 위로,

그리고 달빛 속의 산아래로.     


길은 끝없이 이어지네

구름 아래로 별 아래로,

그러나 방랑을 떠났던 발은

마침내 멀리 있는 집을 향하네.

불과 칼을 보았고

돌 궁전에서 공포를 보았던 눈이

마침내 초록 풀밭을 보고

오랫동안 알았던 나무들과 언덕을 본다네”     


“Roads go ever ever on,
Over rock and under tree,
By caves where never sun has shone,
By streams that never find the sea;
Over snow by winter sown,
And through the merry flowers of June,
Over grass and over stone,
And under mountains in the moon.     

Roads go ever ever on,
Under cloud and under star,
Yet feet that wandering have gone
Turn at last to home afar.
Eyes that fire and sword have seen
And horror in the halls of stone
Look at last on meadows green
And trees and hills they long have known.”     


-빌보, Roads go ever ever on.(from. <호빗>)


이 시와 관련된 더 깊은 이야기는 여기로~!  


그리고 올해도 난 열매를 수확했다. 그 두려움은 그저 허깨비에 불과했던 것이다.     


연말이 가까워지고 있는 지금, 이 9월의 시점에 다다라 올해를 돌아보니 꽤 만족스럽다. 책도 골고루 읽은 편이고(올해 읽은 책 권수가 90권에 다다르고 있다), 봄에 궁 나들이도 갔다 오고(가을에 또 갈 예정이다), 미술 전시회도 다녀오고(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공모전도 몇 개 참여했고(결과는 아직이다), 하고 있는 모든 활동, 프로그램이 잘 되고 있고, 재밌게 하고 있다. 작년부터 동생과 함께 배우기 시작한 미술 수업을 계속하면서 그림 실력이 점점 늘어서 맘에 드는 그림도 꽤 있다. 그리고 항상 2등 상만 타봤는데 (거기에 대해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난 둘째고, 2라는 숫자를 좋아한다) 대상도 타봤다. 정말 얼떨결에.   

내가 그린 그림 중 참 맘에 드는 그림(가운데는 오만과 편견, 오른쪽은 노을이다.) 맨 왼쪽 사진의 보라색 옷 입은 사람이 나다.

 

뜻밖에 찾아온 선물이었다. 장신대 성경 경시대회. 사실 별로 볼 생각이 없다가 엄마가 한번 해보라고 권유해주셨다. 솔직히 나도 내 성경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에 신청을 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와, 아무것도 안 하고 28일간(공부를 시작한 날이 딱 경시대회로부터 D-28일인 날이었다.) 성경만 공부했다.     

그리고 가서 시험을 봤다. 국어 95문항, 영어 50문항이었다. 차를 타고 먼 길을 가는 동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날을 위해 기도하면서도 이상하게 그런 느낌이 항상 들었었는데 참으로 신기했다. 진짜 대상을 받을 줄은 몰랐다. 시험을 보기 위해 그곳에 온 사람들 모두가 다 이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고 온 사람들인데, 그럴 생각이 별로 없는 사람인 나보다 훨씬 공부를 많이 했겠지 않은가. (그런데 이렇게 쓰면 쓸수록 자기 자랑하는 느낌이다. 재수 없게 봐주진 않으셨으면 좋겠다.)     


종합 부문에서 상을 타면 원서 접수를 할 수 있는 지원 자격이 주어지는데 대학 갈 생각이 별로 없던 내게 그 상이 주어졌다. 기분이 좋긴 했는데 나중에는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일찍 대학에 갈 생각도 없었고, 대학에 가서 공부할 거면 인문계 관련 학과로 갈 생각이었다. 아는 목사님께 가서 상담까지 받고 왔다. 결론은, 가지 않기로 했다. 정말 내가 공부하고 싶은 걸 (어차피 뚜렷한 목표와 꿈이 있는데) 학부 때 공부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말씀해주셨고,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보니 난 아직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그날 축하해주신 그 대회와 관련된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내가 대상을 받은 게 정말 놀라워서 사실 대상을 받고 무대에서 내려온 이후로는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리고 하나님, 감사해요! (아직도 제가 왜 받았는지 잘은 모르겠지만요;;)     

자랑스러운 나의 대상♡


사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는 게 문제였다. 입시라는 문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난 수능 공부를 하고 싶지 않다. 대학을 갈 생각은 있지만 수능 공부를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엄청난 모순이지만 난 수능 공부가 그렇게까지 할 만한 유의미한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고3분들과 그 공부를 하셨고, 하고 계시는 분들께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난 정말로 내가 할 필요를 느끼지 않으면 안 한다. 진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내 성격 자체가 너무 고집불통이어서 내가 싫어하는 걸 마땅히 해야 할 만한 이유가 명확하게 있지 않다면 안 하고 만다. 그게 나다.     


모르겠다. 대학을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도. 난 대학이 내가 집에서 혼자 공부할 수 없는 것을 배우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코스라고만 사람들이 여긴다는 걸 최근에 듣고 충격을 먹었다. 수능 공부를 하는 1~2년 동안 책을 제대로 많이 읽지 못한다는 건 내 인생 최대 비극이다.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할 자신도 없다.     


정말 모르겠다. 언젠가 수능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까 봐 수학도 꾸준히 하고 있는데…. 제발 그냥 확실하게 정해지면 좋겠다. 더 이상 걱정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게 말이다. 작년에는 공부하고 싶은 게 많아 학과가 고민이었다. 그러나 딱 공부하고 싶은 게 생기면서 국어국문학과로 정했는데 이젠 대학에 갈까, 아니면 독학사를 할까 가 관건이 된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겠는 이때,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사실 지금까지 뭔가를 정해놓고 무언가를 해본 적은 없었으니까. 좋든 싫든 항상 꾸준히 해오던 것이 결실을 맺었고, 내가 좋아하는 걸 계속 쭉 하다 보니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도, 내가 어떤 걸 해야 할지 알게 되었으니까. 엄마가 항상 얘기하셨듯이 최선을 다하다 보면 기회는 찾아올 거니까.     


난 믿는다.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한다면, 그 노력은 절대 헛되이 버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그래서 올해도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 살 것이다. 어쨌든 길은 끝없이 이어지니까!     


그리고 두렵고 무서울 때면, 정해지지 않은 미래에 진절머리 나고 짜증 날 때면, 나보다 먼저 사신 인생 선배님들의 조언을 들으며 마음에 새기기도 할 것이고, 책 속에서 다정하게 찾아오는 깨달음과 작가님들의 조언을 되새기며 용기를 얻고 힘을 얻을 것이다.     


“여러분 각자가 밟아야 할 길은 이미 발 앞에 놓여 있는 셈이니까요. 단지 보이지 않을 뿐이지요.”

-갈라드리엘, <반지의 제왕-반지원정대>     


“…
두셋이서 피어 있는 꽃보다
오직 혼자서 피어 있는 꽃이
더 당당하고 아름다울 때 있다     
너 오늘 혼자 외롭게
꽃으로 서 있음을 너무
힘들어하지 말아라.”

-나태주, <혼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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