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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Nov 21. 2022

당신에게서는 어떤 향기가 나나요?

Another 13

01 | 향수는 향수를 담고

우리는 경험 가능한 다양한 감각들로 기억을 보관한다. 같은 대상을 경험하더라도 관찰자에 따라 그것은 다르게 기억될 수 있는데, 오감 중 후각은 단연 이것에 가장 크게 관여한다. 같은 원두로 만든 커피는 역한 담뱃재의 향으로 기억될 때도, 또 깊은 풍미로 기억될 때도 있듯이. 그렇기에 우리는 후각을 통해서 특정한 기억을 상기해 추억에 잠기고는 한다. 당신은 아직도 잊지 못하는 순간이 있는가? 만약 있다면 그 순간을 자세히 떠올려보길 바란다. 그때의 온도, 촉감, 그리고 향까지도. 만약 그 향을 담아낸 향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특별한 것. 나의 개인적인 추억을 향수로 담아낼 수 있다면 그것만큼 특별한 향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비싸고 아무리 좋은 향수라도.


02 | Le Labo

오늘 사연의 주인공은 르 라보의 어나더 13이다. 르라보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을 하자면 전통적인 대량생산에 싫증을 느낀 프랑스 출신의 두 창립자 에디 로시(Eddie Roschi)와 파브리스 페노(Fabrice Penot)가 2006년 뉴욕에서 시작한 브랜드로 조향사가 그 자리에서 직접 향수를 블렌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숙성 기간 2주를 지나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독특한 방식, 고객의 이름이나 원하는 문구를 향수 보틀에 적어주는 라벨링 서비스로 등장 초기부터 관심이 뜨거웠다. 특히 르 라보는 사용자마다 조금씩 발향되는 향이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더욱 나만의, 특별한 향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03 | 가장 개인적인 향

그 중 Another 13은 아마 르라보의 향수들 중에 호불호가 가장 심한 향수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Another 13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체취와 어우러져서 향이 달라지는데 이 때문에 개인이 가지고 있는 체취에 따라서 향의 뉘앙스가 많이 달라진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철, 피, 영안실과 같은 냄새가 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포근한 이불, 니트, 잘 마른 수건 냄새가 난다고 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선택받은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향수라고 불리기도 한다.


04 | Another 13 

Another 13은 개인의 체취에 따라 향이 다르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베이스는 머스크 계열이다. 드라이하면서 따뜻한 느낌의 우디 노트와 머스크 노트가 기저에 깔리고 거기에 더해서 사용자의 체취와 어우러져 영안실, 피, 철 냄새와 같은 독특한 냄새를 뿜게 되는 것. 물론 본인에게서 어떤 향이 날 지는 아무도 모른다.


05 | 겨울, 추웠던 공원에서의 기억

 나는 Another 13을 뿌리고 철, 피 냄새와 같은 냄새는 나지 않았다. 나에게서 났던 냄새는 담배를 피우고 손에 남은 옅은 연기 냄새. 나는 비흡연자이지만 몇 번 담배를 태운 적이 있다. 추운 겨울, 머리가 복잡해 공원 벤치에 앉아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잠시 멍을 때렸던 적이 있다.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소연하기도 힘들어 벤치에 혼자 않자 연기를 빨아들이지도 않고 그냥 가만히 타들어 가는 담뱃재를 털기만 했었다. 그때 나에게는 니코틴이라는 화학 물질보다 그냥 잠시 머리를 식히고 밖으로 나올 구실이 필요했기 때문. 잡념을 털고 다시 따뜻한 실내로 들어왔을 때, 추위 때문에 빨갛게 상기된 내 손에서는 따뜻한 온기에 가려진 텁텁한 담배 냄새가 남아있었다. 톰포드, 킬리안과 같이 섹시하고 퇴폐적인  토바코 느낌의 향조가 아니라 스모키하고 차가운 느낌의 담배 냄새. 처음에는 포근한 이불 냄새가 나다가 점차 포근함이 쓸쓸함으로 변해가는 느낌이었다.

 아마 내가 이렇게 느끼는 것은 이러한 겨울의 기억이 내 머릿속에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의 채취도 중요하지만 기억도 향을 인식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매우 호. 담배 냄새라고 하기는 했지만 역한 담배 냄새가 아니라 포근한 살 냄새에 가려진 스모키한 냄새. 하지만 이 냄새가 당신에게서도 난다는 보장은 없다. 나와 똑같은 경험과 채취를 가진 것이 아니라면.


06 | 당신에게서는 어떤 향이 나는가?

Another 13은 재밌는 향수라고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나는 향이 천차만별이니 매장에 가서 시향을 해보고 자신에게서는 어떤 향이 나는지 테스트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부디 선택받은 자이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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