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내내기도 패션으로 봐야할까?
무당벌레와 독개구리, 독사와 같은 동물, 곤충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경계색, 경고색은 일반적으로 일부로 눈에 잘 띄는 화려한 색과 패턴으로 포식자들을 위협하는 보호색의 일종이다. 이 동물들의 특징은 대부분 먹이사슬에서 상위 포식자의 위치해있지 않다는 점, 오히려 하위권이거나 어중간한 위치에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상위 포식자인 사자, 호랑이같은 동물들이 무당벌레처럼 화려한 색을 가진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왜냐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 상위 포식자처럼 강력한 무기가 없는 동물들은 자신을 실제보다 더 과시해야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진화를 해왔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인간 또한 가진 것이 없고 빈 수레 일 때 자신을 더욱 화려하게 치장하고 꾸몄다. 반대로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은 화려함을 지양하고 되려 조용한 럭셔리를 지향했다. 특히 혁명의 근원지 프랑스의 경우 부를 과시하기보다 감추려 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세계 명품 소비 1위로 정반대의 경향을 띠고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온갖 화려한 로고와 사치품으로 치장한 사람의 기저 심리에는 남에게 주목받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 상류층이 되고 싶은 욕구가 깔려 있었을지도. 어떻게 보면 명품의 로고는 인간으로 하여금 경계색의 기능을 했을지도 모른다. 명품을 사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지만 내가 왜 이걸 샀는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반대로 요즘 유행하는 올드 머니 패션은 위장색과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위장색은 ~인 척하는 색. 내가 ~가 아니어도 ~인 척하는 것. 영화 리플리와 기생충을 생각하면 편하다. 특히 영화 리플리에서는 위장색의 면모와 올드 머니 패션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영화 리플리는 상류층을 동경했던 가난한 청년인 리플리가 한순간의 오해로 인해 상류층의 자제인척 연기하게 되는데 결국 서서히 실체가 드러나게 되고 그러면서 시작되는 비극을 그린 영화.
극 중 재벌 3세인 주드로의 패션은 올드 머니 그 자체로 소재와 실루엣만으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감탄을 자아낸다. 이처럼 올드 머니 패션이란 집안 대대로 부유한 삶을 사는 상류층의 패션을 뜻하는 말로 상류층의 패션을 뜻한다.
영화 기생충도 어떻게 보면 비슷한 맥락의 영화이다. 반지하에 사는, 굳이 말하자면 하류층 가족이 명문 대학의 학생인 척을 하게 되면서 상류층의 집에 스며들게 되고 종국에는 자신이 진짜 그런 줄 착각하게 되면서 주인 행세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리플리에서와 마찬가지로 언제까지나 본질은 숨길 수가 없다. 실제로 박사장의 아들 다송이가 기택과 충숙한테서 똑같은 냄새(빨래가 덜 말라 나는 쉰내)가 난다고 한 후부터 이대로 행복할 줄만 알았던 기택의 가족은 점차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올드머니 패션은 말 그대로 상류층의 패션 스타일을 말한다. 그럼 올드머니 패션은 코스프레로 봐야할까? 글쎄... 패션에 있어서 스타일과 코스프레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워크웨어나 밀리터리도 사실 어떻게 보면 노동자인 척, 군인인 척하는 패션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패션이 코스프레와 구분되는 점은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닌 저마다의 재해석과 개인의 개성이 들어갔다는 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척하지 않는 것. 밀리터리 웨어, 워크웨어를 입었다고 해서 그들은 군인인 척, 노동자인 척하지는 않는다.
올드머니 패션 또한 마찬가지다. 리플리처럼 그대로 따라한다면 패션이 아닌 코스프레가 되겠지만 상류층의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아서 참고를 하고 자기식대로 풀어낸다면 그건 코스프레가 아닌 패션.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다. 내가 올드머니 패션으로 입었다고 해서 갑자기 상류층이 된 척을 하지 않는 것. 내 본질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올드머니 패션의 핵심은 조용한 럭셔리이다. 고급스러운 소재감과 편안한 실루엣으로 연출하는 럭셔리한 분위기. 사실 올드머니 패션은 로고가 없어도 제대로 소화하려면 돈이 굉장히 많이 드는 스타일 중 하나이다. 일반 티셔츠랑 좋은 소재의 티셔츠가 별 차이가 있겠냐고 물을 수 있지만 오로지 소재감으로 포인트를 주는 올드머니 스타일에서는 매우 확연하게 그 차이가 드러난다. 위 사진에서 브래드 피트는 고급스러운 소재감의 니트 폴로와 골드 액세서리를 매치해 포인트를 주었다.
올드머니 패션을 참고하고 싶으면 로로피아나와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룩북을 참고하면 좋다. 애초에 브랜드 자체가 최상류층을 위한 브랜드고 그들의 패션을 참고한 것이 올드머니 패션이니 결국 두 브랜드의 스타일이 올드머니 패션이기도 하다. 로고 없이 오로지 소재, 컬러 매치, 실루엣만으로 조용한 럭셔리가 느껴지게 하는 것이 핵심.
영화 기생충과 리플리에서 그랬듯이 본질은 언제나 바뀌지 않는다. 척을 해도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 무슨 스타일, 패션을 시도하건 간에 자신의 개성, 본질을 유지하면서 그 스타일을 자기의 입맛에 맞게 변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글이 올드머니 패션을 이해하고 알아가는데 조금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