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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후회하자": 오타쿠는 애니 속 대사를 따른다

회복 탄력성으로 딛고 일어선 믿음의 여정

by 불안정 온기

한 애니 오타쿠의 지침 사항


"의심하고 후회하기보다 믿고서 후회하자고."


일본 애니메이션 '소드아트 온라인'의 주인공인 '키리토'의 대사이다. 내가 이 대사를 들은 건 중2, 애니메이션 오타쿠로 살아가던 때였다.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키리토'는 위험한 장소에 같이 가주겠냐는 부탁에 굉장히 호탕하게 본 대사를 내뱉는다. 이 대사는 지금도 내 삶의 지침 사항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애매한 의심으로 결정을 미루며, 의미 없는 경우의 수 계산만을 반복하는 상황이 온다면 이 대사를 마음속으로 읊는다. 사실 성인이 된 후 이 대사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삶이다. 적어도 믿음이 배신당했을 때 상처받을 자신이 있는가를 묻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믿음이 준 상처, 닫힌 마음


이 대사를 들은 중학생의 나는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멋있는 말이라고만 생각했다. 실제로 내뱉는 것은 굉장히 쉬웠다. 누군가를 믿고 배신당한다는, 마음에 생채기를 낸 경험이 많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음먹기에 따라 믿음 뒤에 따라오는 결과를 쉽게 감당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만 누구나 그렇듯, 살다 보면 20~30대쯤부터 누군가를 믿었다가 깊게 상처 나버린 경험이 생겨, 열려있던 마음이 차츰 닫히게 된다. 나 또한 연애하고 이별을 한 후나, 친했던 친구의 배신으로 인해 크게 좌절하고 아파한 기억이 있다. 분노, 슬픔, 안타까움, 아쉬움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이성적 생각을 물어뜯었다. 대다수가 겪어본 믿고 후회해 본 경험의 아픔의 크기는 천차만별이지만, 다시금 타인으로 하여금 내 마음에 비수를 박게 두지 않기 위해 엄격한 심리적, 물리적 거리 두기를 실행하기도 한다.



의심이 낳은 또 다른 후회와 한계


다만 그래서일까. 의도한 대로 내가 상처받는 일들은 줄어들었지만, 반대로 의심하고 난 후 후회하는 일 또한 생겨났다. 처음 만난 사람이 너무 친절하게 다가와 오히려 의심하고 경계한 나머지 내 영역 밖으로 밀어냈지만, 알고 보니 진심으로 나를 도와주려던 좋은 사람이어서, 좋은 인연을 놓칠 뻔했다던가. 혹은, 팀 프로젝트에서 동료가 제시한 참신한 아이디어를 처음에는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여 무시했지만, 나중에 그 아이디어가 성공적으로 구현되어 큰 성과를 가져왔을 때라던가 말이다.


무엇보다 의심하는 일들이 늘자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성공 확률이 적은 일은 "어차피 안 될 텐데.... 하지 말아야지."라며 포기했다. 가능성의 이야기보다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더 현실적이라 느꼈다. 그렇게 무엇이든 하지 못하는 이유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서서히 내 잠재적 한계는 작아져만 갔다. 그렇게 무언가 도전해 보려는 의지조차 꺾인 채, 작은 한계의 공간에서 바닥만 바라보던 나만이 존재했다.



내면의 단단함을 찾아서 : 변화의 시작


이런 상황에서 변화를 결심한 건 퇴사 이후, 심리적 안정 찾기를 시작한 지 2~3달 정도 후였다. 이때의 나는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함께 어떤 갈등에도 심리적으로 크게 흔들리지 않겠다는 묘한 자신감이 있을 때였다. 자신을 단단히 고정할 내면적 기준들이 서서히 자리 잡힘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찾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어 언제 꺼질지 모르는 불꽃이 아닌, 거센 바람에도 흔들리듯 춤은 추지만 여전히 타오르는 그런 불꽃과 같은 사람이 되었다는 확신이 있었다. 즉, 자기 기준을 확고히 하게 되어 회복 탄력성 또한 높아지게 된 것이다. (물론 이때의 나는 자각이 없었다.)



상처를 딛고 확장되는 나 : 용기 있는 믿음


그 이후 생겨난 변화들은 꽤 놀라웠다. 무엇이든 "안 될 것 같은데"라고 말을 흐리는 것이 아닌, "이렇게 해보면 될 것 같은데"라고 말하는 문제 해결 지향적인 내가 있었다. 그렇기에 내가 내린 한계라는 낮은 천장을 서서히 확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믿음에 대한 배신은 있었다. 물론 아파했다. 너무나도 힘들어했다. 하지만 아픔이 시간에 비례하지 않음을 알았고, 충분히 아파한 후 "나는 여전히 나은 사람이다."라는 말을 부적 삼아 일어났다. 후회의 아픔을 제대로 느끼면서도 믿어볼 용기를 가진 나를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



키리토의 대사와 나의 성장 : 의심과 믿음 사이에서


이 글을 쓰면서 한번 생각해 본다. 과연 소드아트 온라인의 주인공 '키리토'는 이런 의미들을 충분히 음미한 후 이런 대사를 뱉은 것인 걸까 하고. 오히려 16살짜리 주인공이 이런 말을 뱉었기 때문에, 지금의 시청자들이 봐도 '키리토'가 회복 탄력성이 강한 성장형 캐릭터임을 느낄 수 있지 않는지 생각한다. 물론 비판적 사고를 통해 충분히 경계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러므로 충분한 의심과 경계를 통한 조심스러운 접근 방식 또한 합리적인 행동 원리일 것이다. 다만 그런 이들에게 이런 상처투성이 사고방식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의심과 경계심에 차, 본인의 성장을 멈추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써 제안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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