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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투성이인 당신을 사랑하는 법

고슴도치 딜레마의 새로운 모델링

by 불안정 온기

고슴도치 딜레마


심승현 만화가님의 '파페포포 메모리즈'라는 에세이툰이 있다. 여기에는 '고슴도치'라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퍽 인상 깊게 본 기억이 있다. 줄거리는 이러하다.

두 고슴도치가 추위에 벌벌 떨다가 서로가 춥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 고슴도치가 말했다.

"우리가 서로 붙으면 따뜻해지지 않을까?"


좋은 생각이라고 판단한 고슴도치가 다가가 몸을 붙여본다. 하지만 서로의 가시가 너무나도 따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떨어져 있을 때의 추위와, 붙으면 가시에 찔리는 아픔 사이를 반복하다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인간관계의 가시, 마음의 상처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타인에게 상처받은 경험이 있고, 그 기억은 우리를 움츠러들게 만든다. 상처받은 곳을 다시 자극하면 아프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타인의 상처 또한 건드리지 않으려 조심스레 거리를 유지한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어른스러운 관계, 성숙한 배려일 것이다.



가시와 굳은살, 상처에 대처하는 두 가지 방식


하지만 나는 사람의 마음이 온통 가시로만 뒤덮여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처 입은 자리에 돋아난 날카로운 가시가 있는가 하면, 고슴도치의 부드러운 뱃살처럼 연약한 속살을 드러낸 곳도 공존한다. 그리고 상처가 생겼을 때 그 자리에 새로운 가시를 세울지, 아니면 아픔을 견뎌내며 단단한 굳은살을 만들지는 오롯이 그 사람의 몫이다.



서로의 부드러운 곳을 향하여


두 사람이 원만하게 가까워지는 과정은 이와 같다. 서로를 향해 돋아난 가시가 상대방을 찌르지 않도록, 가시 없는 부드러운 쪽으로 몸을 돌려 천천히 다가서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의 속살을 맞댈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깊이 공감하는 관계로 거듭나는 것이다.



가시투성이인 사람을 마주했을 때


문제는 온몸이 가시로 뒤덮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마주했을 때다. 다가갈 틈이 보이지 않아 막막하기만 하다. 이런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가시에 찔릴 각오를 하는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아픔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적당한 거리'를 선택한다. 결국, 타인의 온기를 갈망하면서도 다가오는 모두를 밀어내니, 외로움의 추위 속에서 홀로 떨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기꺼이 다가서는 용기


하지만 이런 관계 속에서도 가시에 찔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가까이 다가가지 못해 후회하느니, 차라리 찔리는 아픔을 택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상대방과 가까워지기를 간절히 원하기에, 상대의 상처가 역으로 자신을 힘들게 하더라도 기꺼이 그 짐을 함께 짊어진다.


여기서 이 자학의 전사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찔린 상처가 곪아 터져 그 자리에 새로운 가시가 돋아나는 사람, 그리고 상처가 아물며 웬만한 아픔은 견뎌낼 수 있는 단단한 '굳은살'을 만드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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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은살의 온기를 기다리며


굳은살이 박인 모습이 겉으로는 흉하고 안타까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은 기필코 가시 너머 당신의 얼굴을 마주하리라 다짐하며, 기꺼이 그 아픔을 감내하는 따뜻한 사람들이 우리 곁에 더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진짜 온기는 어쩌면 '적당한 거리'가 아닌, 굳은살 박인 서로의 상처를 기꺼이 맞대는 순간에 피어나는 것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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