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위한 사회는 없다. (1)
한국인은 가족을 소중히 여긴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렇게 배워왔다. 명절이면 빠짐없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가족 중심’은 곧 한국인의 정체성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2021년 발표된 퓨리서치센터의 조사결과는 이 믿음에 의문을 던진다. 전 세계 17개국 시민들에게 “당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미국, 프랑스, 독일, 호주 등 대부분의 국가는 ‘가족’을 최우선 가치로 꼽았다. 반면, 한국은 ‘물질적 풍요’가 1순위로 꼽힌 유일한 국가였다.
물론, 이는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이기적이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가족을 잘 돌보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절박한 전제 아래, 가족보다 생계가 먼저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하지만 그 현실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언젠가 가족을 위해 일했지만, 정작 가족과 함께한 기억은 사라지는 삶에 익숙해질지도 모른다.
나는 네 명의 아이를 키우는 아빠이자, 전업주부다. 보통은 아내가 집안일을, 남편이 생계를 책임진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게 살기로 했다. 지금 우리집의 바깥양반인 아내는 본인의 전문성과 경험(네자녀를 출산한 엄마)을 살릴 수 있는 영유아를 양육하는 부모들을 지원하는 직장에 다니고, 나는 전업으로 아이들을 돌보고 가사를 책임진다. 지금 우리 가정의 일에 대한 중요한 기준은 단 하나다.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구조인가?
아내는 청소년지도사의 10년차 경력을 포기하고 걸어서 출퇴근 할 수 있는 지금의 직장으로 옮겼는데, 이 곳에선 사회복지사로서 1호봉 급여를 받으며 다시 경력을 쌓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이 등원, 등교를 하고난 뒤 여유있는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반드시 아이를 동반이 가능한 곳에서만 일했다. 학교 운영위원회, 학부모회의, 교육 강의 등 어떤 자리든 넷째와 함께였다. 나에게 중요한 건, ‘참석’보다 ‘함께하는 삶의 연습’이었기 때문이다.
취미생활이나 운동도 예외는 없다. 우리는 온 가족이 함께 공원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지금은 여섯 식구가 함께 유도 도장을 다닌다. 대부분 부모들은 아이만 수련시키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함께 배우고 함께 구르며, 몸으로 살아내는 ‘가족 중심’을 택했다.
가족은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가족을 위한 삶을 설계할 수 없는 사회. 나는 그것이 지금 한국의 가장 모순된 현실이라고 느낀다.
긴 노동시간, 장거리 출퇴근, 가족 돌봄을 고려하지 않는 노동 구조, 아이 동반을 금기시하는 공적 공간, 가족 활동을 위한 비용 부담. 이 모든 조건은 가족과 함께하는 삶을 ‘비효율’로 간주하게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묻는다.
“정말 네 식구가 유도장에 같이 다닌다고요?”
“아이를 데리고 회의에 간다고요?”
마치 이상한 일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그게 이상한 일이어야 할까?
가족 중심이라는 말이 상징이 아니라 실천이 되기 위해서는,
그 말에 걸맞는 시간 구조, 공간 구조, 노동 구조, 사회적 인식이 따라야 한다.
어쩌면 가족 중심이라는 말은 여전히 한국 사회 곳곳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중심은 너무 무거워져서, 누구도 그곳에 진짜 가족을 앉히지 못하게 되었을 뿐.
‘가족을 위한다’는 말이 어떤 때는 핑계가 되기도 한다. ‘지금은 돈 벌 시기니까, 가족은 나중에’라는 말은, 어느덧 가족 없는 시간을 정당화하는 면허가 되었다. 결국 우리가 잃는 것은 ‘가족’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라는 기억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있고, 함께 움직이고, 함께 배우며 살아간다.
그 삶은 복잡하고 효율적이지 않지만, 함께라는 것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다.
삶의 중심에 가족을 두고 있다는 말, 그 문장을 우리 가족과 함께 증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