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자녀 아빠의 청소년기 예방주사
이제 첫째가 초등 저학년 범주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머지않아 아빠가 보여주는 세상만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는 시기가 올 것이다. 그 시기가 오면 아이들의 취향과 관심은 점차 아빠보다는 또래 집단의 영향을 더 많이 받게 될 것이고, 부모로부터 인정받고 이해받기 위한 시도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다.
아이들이 어떤 관심사를 가졌을 때 그것을 부모에게 설명하고 허락받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상황이 반복되면, 그 과정 자체를 피하려는 경향이 생긴다는 것이다. 결국, 일상의 대화 외에는 의미 있는 소통을 하지 않으려 하거나, 방문을 걸어잠그는 모습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 장면을 보며 어른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춘기니까...."
나는 이 말에 이제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건 정말 사춘기라서가 아니라, 소통의 피로를 줄여주지 못한 어른들 탓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충분히 신호를 보냈지만, 부모는 신호를 의식하지 못했고, 그 결과 아이는 문을 닫은 게 아닐까.
자녀와의 소통의 단절이 시작되었을때, 부모는 아이들이 설득하기 위해 써야 했던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 그리고 아이들이 기다렸던 시간보다 더 오랜 기다림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이 고민은 내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됐다. 나는 어른이 된 후, 그리고 부모가 된 이후. 공동생활을 하면서 누군가를 대상으로 마음의 문을 닫았던 경험이 있다. 수년간 진심을 다해 다가갔지만, 돌아오는 건 차가운 말과 여전히 이기적인 태도였다. 결국 나는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물러섰고, 인사만 주고받는 거리만 남겼다.
그 경험은 나에게 의사소통에 있어 깊은 피로감을 남겼고, 문을 먼저 닫아버린 입장에서는 스스로 문을 다시 열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도 알게 되었다.
그 기억 속에서, 나는 내가 두려워하는 사춘기의 본질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더 단단히 다짐한다.
단절되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아이들이 스스로 문을 닫기 전에, 부모와 소통하는 데 에너지가 덜 들도록 말 한마디에도 신경을 쓰고, 아이들이 사용하는 표현이나 단어들을 공부한다. 또래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문화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가급적이면 그런 경험을 친구보다 아빠와 먼저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든다.
스티커사진이 뭔데요?
아이들과 같이 방송댄스 방과후를 하고있던 고학년 언니에게 스티커사진은 홍대가면 어디서 찍으면 좋은지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순간 내가 시대에 뒤처졌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아… 이젠 인생네컷이라 해야 하는구나.’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고, 아이들은 그 안에서 훨씬 더 빠르게 자란다. 그 속도를 따라가려면 ‘가르치는 부모’가 아닌 ‘함께 웃고 놀고 고민하는 동행자’가 되어야 한다. 아이의 세계를 바꾸기보다, 그 세계 옆에 함께 서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홍대거리에 스티커사진 아니... 인생네컷 사진을 친구들과 찍으러 가기 전에 먼저 아빠와 함께 그 추억을 만들었다.
나는 청소년시기를 ‘관리의 시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케줄을 짜고, 진로를 통제하고, 아이의 모든 걸 조절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관계를 단절로 이끈다. 오히려 청소년시기는 ‘연결의 재설계 시기’다. 말이 줄어든다고 해서, 관계가 끝난 것이 아니다. 그건 새로운 방식의 대화, 새로운 연결의 시작일 수 있다.
나는 우선적으로 아이들이 부모를 설득하는 데 드는 피로를 줄여주고 싶다. 질문이 대화의 문을 열 수 있도록, 일상이 계속해서 신호가 될 수 있도록, 작은 농담과 웃음 하나에도 진심을 담아 다가가고 싶다.
언젠가 아이들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런 관계, 침묵 속에서도 연결되어 있는 그런 관계로 나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