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의 틱에 시간변화가 생겼다. 하루에 계속하던 틱이 1시간 간격으로, 어떤 날은 하루에 두세 번으로 점점 발생빈도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상담을 받으며 아이가 아닌 나의 문제를 자각하기 시작한 후부터 틱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던 것 같다. 앞뒤로 목을 흔드는 행동틱이라 함께 식사를 할 때 어려움이 있었지만 최대한 1호가 눈치를 보지 않게 평온을 유지하려 했다. 이 마음을 아는지 호기심과 질문이 많은 2호도 1호의 틱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호기심을 보이지 않았고 행동을 쳐다보기만 할 뿐 질문도 하지 않았다. 가족들의 온 신경은 1호에게 가 있지만 그 누구도 티를 내지 않았고 오히려 집에서 편하게 틱을 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게 배려하고 있었다.
상담 전 눈에 보이는 1호의 틱을 없애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그래서 인터넷과 관련 책들을 뒤져가며 틱에 대해 공부를 했다. 그러나 상담을 받으면서 나도 모르게 외관상 드러나는 모습이 아닌 마음으로 시선을 옮기게 되었다. ‘어떡하면 텅 빈 마음을 채울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마음에 여분의 총알을 넣어 주어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게 할까?’ 엄마인 나의 마음도 텅 비어있었기에 함께 채워 나가기로 결심을 했다. 그래서 마음 안에 움츠려 앉아 있는 어린 시절의 나에게 “어른아이”라 이름을 붙여주며 부르기 시작했다.
1호와 어른아이의 텅 빈 마음 채우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친정과 거리 두기였다. 상황상 완전한 거리는 둘 수 없으나 예전처럼 내 일상을 망쳐가며 몰두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1호에게는 온전히 엄마를 독차지할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하여 한 달에 한 번씩 체험학습을 이용하여 학교를 빠지고 둘만의 데이트 시간을 확보했다. 손잡고 집 주변을 산책하기, 맛있는 음식 먹으러 가기, 서점가기, 집에서 과자 먹으며 영화 보기, 집에서 보드게임하기 등.. 평범한 일상에서 소소하게 둘만의 데이트를 즐겼다. 특별히 거창한 말이 오가지도 않았고 대화를 시도한다는 등의 어색함은 없애버렸다.
그런데 어른아이에게는 1호와의 데이트시간이 즐겁지 않았다. 남들은 즐겁게 한다는 보드게임이 지루하고 힘들기만 했고 산책보다는 누워서 자고 싶었다. 피로함이 온몸을 짓누르고 있고 1호 하고 하는 소소한 데이트가 마냥 어색하기만 했다. 주어진 역할에 대한 책임감은 강해 뛰어나게 일은 잘하면서도 자신을 위해 온전히 무언가를 즐기는 것은 할 줄 몰랐던 어른아이.
표면상 1호와 데이트를 하는 것이지만 마음속으로는 끊임없이 어른아이와 대화를 하며 달래주고 있었다.
‘어른아이야 힘들고 어색하구나. 당연하지 넌 해본 적이 없었잖아. 지금부터 해보면 돼. 그 시절 하고 싶었던 것을 지금 하는 거야. 너는 지금 1호와 같은 나이야’
‘하기 싫지? 해봐 얼마나 재미있는데. 이왕 하는 거면 재미있게 해 보자 어른아이야.’
라며 끊임없이 속삭여 주니 변화가 일어났다.
1호와 함께 보드게임을 하는데 웃고 있었고 지루함 보다는 승부욕이 발동되어 진심으로 게임에 임하고 있었다. 함께하는 모든 일에 즐기려고 노력하니 점점 더 어른아이를 달래주는 속삭임이 줄어들고 있었다.
동네 놀이터네 1호와 같은 나이지만 친구들과 섞이지 못하고 유난히 홀로 앉아 있는 아이가 있는데 늘 마음이 쓰였다. 뜨거운 여름 어느 날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 또 혼자 덩그러니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나랑 같이 아이스크림 먹을래?”
“..........”
“ 조금만 기다려줘. 내가 사 올게”
“..........”
“어떤 아이스크림 좋아해? 먹고 싶은 거 골라”
“.........”
“그거 좋아하는구나? 더우니까 저기 그늘에 앉아서 먹자”
“........”
마트에서 사 온 아이스크림을 놀이터 외톨이 그 아이랑 나란히 앉아 하늘을 보며 말없이 먹기만 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평온함과 행복함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차올랐다. 용기를 내어 다가간 나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준 그 놀이터 친구에게 건넨 말은 사실 나의 어른아이에게 건넨 말이었다.
놀이터 그 아이는 여전히 말도 없고 혼자 다니며 일상을 지내고 있지만 내 눈에 더 이상 외롭거나 쓸쓸해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나와 눈 맞춤을 하고 내가 먼저 인사를 하면 고개 정도는 숙여주었다. 유난히도 마음이 가던 놀이터 그 아이의 움츠린 모습이 내 마음과 같아 나도 모르게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이 외에도 텅 빈 마음을 채우기 위해 유튜브 영상도 찾아보고 책도 많이 읽었다. 나의 마음을 먼저 채워야 1호의 마음을 돌봐줄 수 있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애정을 쏟았다. 무엇이 불편하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어떠한 부분을 수정해야 하는지 등 문제점을 찾고 스스로 토닥토닥하며 새롭게 마음을 채우려 노력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예상치 못한 다른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30여 년 전에 순종적인 성격 때문에 억압해 두었던 학창 시절의 감정이 뒤늦게 밀려들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