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종소리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 집에서 100미터 떨어진 곳에 서울에서 이사 온 친구가 있었다. 우리 동네는 문경의 한 촌 동네였는데 뒤에는 나지막한 산이 있고 앞으로는 넓은 벌판이 펼쳐져 있었다. 그 벌판 끝으로 큰 도로가 있고, 도로 옆에 소나무 숲이 우거진 대정(한우물) 숲이 있었다. 그 옆으로는 큰 냇가가 농암 면이라는 동네를 휘감고 흐르고 있었다. 한우물이라는 동네였는데 거기엔 주로 신, 권, 손 씨들이 살았는데 이사 온 친구 집이 유일하게 박 씨였다. 그래서 그 집을 박씨네라고 불렀다. 그 집에 막내딸이 있었는데 나랑 같은 나이였다. 농사를 많이 짓는 우리 집과는 달리 박씨네 집은 미장일을 하셔서 생활하셨다. 집은 작고 화려하지 않았지만 부모님도 젊으셔서 집안이 늘 깨끗하고 화초도 많이 가꾸고 계셨다. 그와 반대로 우리 집은 소, 토끼, 돼지를 키우는 데다가, 농사일도 많아 집은 너저분하고, 여름이면 파리가 들끊었다.
더구나 친구네는 농사를 짓지 않아 밭이나 논에 따라가는 일도 없었다.
특히 그 당시 일요일 아침에 들장미 소녀 캔디와 은하철도 999가 엄청 인기를 끌고 있었다. 난 꼭 그 시간에 새터밭으로 끌려가 농사일을 거들어 드려야 했다. 아침 9시쯤 만화가 시작 되는데 그 시간에 되면 장터에 있는 교회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교회 종소리가 울릴 때 나도 따라 울고 싶었다. 만화도 못 보고 끌려 나와 있는 내 신세가 너무 슬펐다. 그리고 깨끗한 집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을 친구가 너무 부러웠다. 그뿐만 아니라 친구 아버지는 그 당시 콩순이 같은 인형도 친구에게 사다 주었다. 장난감이라고는 납작한 돌에 풀이나 찍어서 소꿉놀이 하던 나에 비하면 그야말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틈만 나면 친구 집에 가서 놀고, 자고 우리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아침마다 아버지가 날 찾으러 오셔서 화를 내셨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 민폐였지만 친구 부모님은 늘 너그러워졌다.
초등학교3학년 때부터 이어온 인연은 아직까지 계속되어 지금도 가장 친한 친구다. 경기도 쪽에 살고 있는데 가끔씩 가서 자고 오기도 하고 맛난 것도 얻어먹는다. 다음 주에는 부산에 금수복국 먹으러 온다는데 기다려진다.
JN아 아나? 옛날에 내가 너희 집 엄청 좋아하고 부러워했었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