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안 옆 골방
한여름 장마철에 나는 내 방에 누워서 토란 위로 떨어지는 빗방물이 또르르 굴러 떨어지는 모습을 무척 좋아했다. 우리 집은 7남매지만 나이차가 많이 나서 다들 일찍 도시로 나가서, 고3 때까지 뒤안에 있는 골방은 내 아지트 였다. 엄마는 잘 치우시는 성격이 아니어서 너저분했지만, 중3 때쯤 나는 골방에 이사와 나만의 공간만은 깨끗하게 꾸몄다.
새로 벽지를 사서 도배도 하고 큰오빠가 쓰던 책상도 들려놓고 내 맘에 쏙 들게 했다. 난 그곳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집 제일 뒤에 위치하고 있어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곳이었다.
특히나 무서운 아버지의 사랑방에서도 멀어서 그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것도 좋았다.
뒤안에 나는 가끔 잡초를 정리하고, 여름이면 엄마가 심어놓은 토마토도 따 먹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심어놓은 잔대가 나뭇가지를 타고 올라가는 모습이 나에게는 매력적으로 보였다.
특히나 비 오는 날 큰 토란에 소나기가 떨어져 떼구르르 구르는 모습은 지금의 멍 때리기처럼 나의 물방울 멍 때리기의 시작이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그 당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책을 밤늦게 읽으면서 17살 순수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던 나의 모습도 그려진다. 그 방에서 나는 고전도 읽고, 국어선생님을 짝사랑하기도 하고 미래를 준비했다.
20살 부산으로 오기 전까지 나의 공간은 나를 지지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