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글은 쉽게 써지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한 나의 책

by 지나


장편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


독립 출판을 위한 글을 쓰면서 자꾸만 든 생각은,

어떻게 한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책 한 권 분량의 글이 뽑혀 나오느냐는 것이었다.


막연히 쓰다 보면 책 한 권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진짜로 글을 쓰기 시작하려니 글이 한두 페이지까지만 써지고 더 이상 진행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정한 주제는 적합한 주제가 아닌가 싶어 괜스레 주제만 왔다 갔다 바뀌었다.


총 8주간의 독립 출판 과정이었지만, 그 중 실상 7주는 뭘 쓸지 고민하며 글을 썼다가 지웠다 주제를 이리저리 바꾸는 시간이었다. 매일매일 '오늘은 글 써야지'하며 노트북을 켜놓고 앉아도,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글 쓰는 시간이 피하고 싶은 시간이 되었다. 독립 출판 프로그램을 함께 듣는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잘 진행하고 있는 듯했는데, 나는 약간은 뒤처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책을 쓰고 싶은 주제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책을 내겠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을 내겠다는 것은, 이미 전부터 한 가지 주제로 써놓은 글의 데이터가 많아야 하고, 글 데이터들을 새로운 아이디어와 함께 짜임새 있게 조합하고 다듬는 일이다. 잘 써지지 않는 글감은 이미 책을 쓰기 전부터 도태되어야 할 주제였다.


즉, 책을 쓰는 일은 글쓰기의 시작 단계가 아닌 최종 단계였다.


이걸 몰랐던 나는, 글은 빨리 써야겠는데, 글을 쓰려면 주제를 빨리 정해야 했고, 그래서 이리저리 주제 고민만 하며 진행되는 것 없이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나의 2번째 글에서 이야기했듯 책 주제가 '3년간 농장 활동을 운영하며 성장한 이야기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진 운영 매뉴얼'로 거창했지만, 점점 단순화되어 가기 시작했다. 주제가 '농장 프로그램 동안의 에피소드'로 바뀌었다가, 더 단순화되어 '식물과 관련된 나의 이야기' 이렇게 바뀌었다. 아무리 주제가 바뀌어도 글이 책 한 권 분량으로 나오기엔 무리였다.


독립 출판 프로그램 선생님께 나는 그냥 책 안 내겠다고 말해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최후의 방안으로 AI에도 이런 글쓰기 고민을 털어놓고 어떻게든 주제를 정해보려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내 책을 위한 글을 쓰는 것보다 AI에 고민을 털어놓기 위해 쓰는 글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AI와 고민 상담을 하는 책을 써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사실 나의 책이 완성되어 세상에 나와 있다.

과연 나는 어떻게 최종적으로 그렇게 어려워하던 주제를 정해서 글을 써냈을까?


책 쓰기를 마감해야 하는 거의 막바지까지 다 왔을 때, 마침 면접 일정이 잡혔다.

면접을 극도로 어렵고 힘들어하는 나는, 그날도 면접을 대차게 말아먹고는 속상하고 창피한 마음에 몇 시간 동안 질질 울었다. 그렇지만 책을 이제는 진짜 마감해야 한다는 미션이 있는 이상 글은 써야 했다.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나는 면접 본 직후의 그 억울한 듯 답답한 마음을 안고 분노에 차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책 제목도 금방 정했다. '취준생 삽질 일기'.

내가 20대 동안 취업을 위해 이것저것 해보고 그 과정들에서 깨우친 것과 생각들을 적어 내려갔다.


거의 3일 밤낮을 하루 종일 글만 썼다. 그랬더니 총 36페이지 분량의 책이 완성됐다.

책 한 권으로는 그리 많은 페이지 수는 아니지만 내가 정말 극한의 집중을 하면 어느 정도의 분량까지 글을 쓸 수 있는지의 한계치를 알아볼 수 있었다. 마치 헬스장에서 운동할 때 1회 들어 올릴 수 있는 무게의 최대치를 1RM이라고 하듯이, 나의 글쓰기 1RM은 36페이지인 것이다.


나는 그렇게 분노의 에너지로 며칠 동안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해 책을 써낼 수 있었다.

면접을 망한 것이 그렇게 나쁘지 않은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덕분에 지금 나의 책이 이 세상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만에 완성한 책이기에 아쉬움도 있지만 그래도 내가 낼 수 있었던 최선의 결과물이었던 것 같다.

이번 독립 출판은 아무튼 내가 직접 만든 책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책을 쓰며 깨우친 것들을 잘 보완해서 앞으로 반드시 더 좋은 책을 내고 싶다!

완벽하진 않아도 이런 독립 출판을 해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음에 너무 감사하다.


점점 더 업그레이드되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작가가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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