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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nogoodnw May 28. 2021

나의 인생관 - 2. 어떡하면 둥그레질까?

전 편의 말미에도 적어놓았지만, 사실 나는 둥그스름한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굳이 나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한창 떼쓰는 미운 다섯 살' 정도라고나 할까. 얼마 전에 회사 동기와 함께 밥을 먹으면서, 체감하는 자신의 나이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에도 나는 내가 아직 다섯 살처럼 느껴진다고 말했었다. 실제로도 외려 다섯 살의 내가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어쨌든,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나만의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가는 사람이다. 고맙게도 가끔 무인도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어 쓸쓸하진 않지만, 새로운 관계에 대해서는 항상 겁부터 먹고 시작한다. 이런 사람이 원을 말하는 것이 웃길지도 모르지만, 나만의 무인도에서는 나의 모든 것이 허용되니까, 개의치 않고 글을 이어가야겠다.


전 편에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를 둥글게 만드는 것을 다루었다면, 이번 편에서는 막 나만의 무인도를 만들기 시작한, 중고등학교 무렵의 내가 나를 다듬은 방식과 생각에 대해 다룰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명제를 깨달은,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에서야, 사회 안에서의 나를 둥글게 만드는 것이 그다음의 어떤 생각보다도 훨씬 중요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이때의 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이런 깨달음도 없었을 테니, 중요한 것과는 별개로 모든 생각들은 내게 똑같이 소중하다. 그러니까 아주 조심스럽게, 첫 편처럼 양보하지 않고 적어야겠다.


나의 첫 번째 원이 초등수학 문제에서 시작했다면, 두 번째 원은 중학교 저학년 무렵 배웠을 원의 정의에서 시작했다. 원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한 점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 한창 둥그렇게 살겠다는 생각에 빠졌던 나는, 원의 정의를 알고선 고민에 빠졌다. 분명 사람들 사이에서 둥글둥글해지기만 하면 원이 될 줄 알았는데, 엄밀한 정의의 원이 되기 위해서는 둥그레지는 게 아니라 중심에서 같은 거리에 있어야만 했다. 중심에서 같은 거리에 있다는 것을 삶에 적용하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른 분야의 개념들을 서로 연결하는, 조금 어려운 말로 '동형화'라는 작업이 필요했다. 컴퍼스로 원을 그렸던 기억을 떠올려보자. 원을 그리려면, 컴퍼스의 바늘로 중심을 찍은 채 점들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곡선을 그려야 한다. 원의 중심이 원을 결정하듯, 내 삶의 주체는 누가 뭐래도 '나'니까, 원의 중심은 내 삶을 결정하는 '내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중심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는 하나하나의 모든 점들은 내 삶을 이루는 나의 모든 행동들이 된다. 결국 내 삶을 원처럼 그리려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사는 것이 중요했다.


이때부터, 나는 나름대로 다채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거창한 경험을 하지는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할 줄 아는 것들이 꽤나 많았기에, 공부를 하는 대신 여러 취미들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게임, 바둑, 노래, 피아노까지. 물론 당시에는 공부가 너무 하기 싫어서(사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합리화하는 데에 이 생각을 이용했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역시 저 때 다양한 것들을 열심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저 취미들이 없었으면 아마 지금쯤 진짜로, 진짜로 재미없게 살았을 테니까. 게임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전략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을 거다. 바둑을 두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인생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할 수 없었을 거다.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면, 오디션 프로그램에도 참가할 수 없었을 것이고, 수없이 불렀던 결혼식 축가도 없었을 거다.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면, 서울로에서 피아노를 치는 즐거운 점심시간도 없었을 거다. 정말 정해진대로만 사는, 싱거운 내 삶에서, 취미들은 항상 소금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취미들보다 더 중요했던 건,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었다. 특히나 괴팍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나를 받아주었던 친구들은, 지금도 나를 살게 하는 큰 원동력이다. 고맙게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인도에 찾아와서, 아직 아빠가 되긴커녕 장가도 가지 않았지만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와 놀아준다. 이제는 다들 사회의 기둥이 되어서, 예전처럼 일주일에 4-5일을 보진 못하지만, 그때와는 다른 주제의 대화들을 나누지만, 내 생애 가장 즐거웠던 시절로 나를 이끌어준다. 그저 망나니 같았는데, 어느샌가 자신만의 훌륭한 삶의 방식으로 한 명 한 명 모두가 나의 선생님이 되어준다. 비록 내가 모자란 탓에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실천하지는 못하지만, 항상 내게 귀감이 되어준다.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알게 모르게 나는 나만의 원을 그리고 있었다. 당시에는 단순히 공부가 싫어했던 여러 가지 일들이, 내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을 만들었다. 사회적 존재로서 원을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한 생각이었을진 몰라도, 지금의 내 인생을 그리고 있는 것은 이때의 시간들이다. 누군가 나에게 이 시간으로 돌아갈 기회를 준다 해도, 나는 지나온 이번 생애처럼 똑같이 살 것이다. 이때의 내가 있었음에 지금의 내가 있다. 글을 적으면서도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나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평소와는 달리 문장들도 들썩이는 게 느껴진다. 어쨌든, 이렇게 즐거운 학창 시절을 거쳐서 나는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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