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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nogoodnw Jun 15. 2021

골프 스윙 - 예술과 게임의 결합

1. 예술 같은 스윙

무책임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안다'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안다'라는 무게가 나를 짓누르는 것이 무섭다. 그 어떤 분야도 내가 만족스러울 만큼 '알지 못한다'. 실제로 내 글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어렴풋이 느끼겠지만, 내가 적은 모든 글들은 지식이나 정보의 전달보다는, 내 생각을 풀어놓은 것에 훨씬 가깝다. 글을 적는 데에 사용된 글감들도 그나마 '어렴풋이 안다'라고 말할 만한 몇 가지에 국한된다. 바둑, 피아노, 노래, 게임 등 적어도 15년은 넘게 해 온, 그래도 이제야 조금 할 줄 알겠다 싶은 것들만 내 글에 등장한다. 그런데 오늘은 그 강력한 카르텔을 깨고 조금은 도전적인 글을 쓰고 싶다.


올해 제일 잘한 일을 꼽자면, 골프를 시작한 일이다. 사실, 새로운 이벤트 없이 매일매일을 똑같이 살아가는 사람인지라 잘했다 꼽을 만한 일도 딱히 없긴 하지만, 여하튼 내 삶을 꽤나 양의 방향으로 틀어 놓았으니 올해 들어 최고의 선택이었다 말하고 싶다. 30년도 넘게 운동과는 거리가 멀던 내가 매일 연습장을 들러 공을 치고, 필드에도 나가 시원하게 나아가는 공을 바라본다. 물론 아직 공보단 지구를 때릴 때가 더 많지만. 덕분에 갈빗대도 나가고, 갈비가 좀 나아지니 최근에는 팔꿈치가 시리다. 몸의 희생으로, 그래도 이제는 제법 채를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아직 내 스윙은 아름답지 않고, 문제 투성이지만 '골프에는 끝이 없다'라는 말을 믿고 매일매일 채를 휘두른다.


공을 계속 치다 보니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골프는 아름다운 스윙을 가지고 경쟁하는 스윙 콘테스트가 아니다. 골프의 목적은 최대한 적게 공을 쳐서 공을 홀컵에 집어넣는 것이다. 스윙이 이상해도 공을 똑바로 멀리 보내는 놈이 유리하다. 실제로 유명한 프로들을 봐도 모두 폼이 제각각이고, 몇몇 프로들은 이게 골프 스윙인가 싶은 폼을 갖고 있다. 물론 아름다운 스윙이 똑바로, 그리고 멀리 보낼 가능성이 높겠지만, 아름답진 않더라도 내게 제일 익숙한 자세로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 공을 똑바로 멀리 보내는 날이 오지 않을까? 스윙에는 답이 없다는데, 이걸 아름답게 고치기 위해 내가 편한 자세로 연습할 시간을 버리는 것이 옳은 일일까? 바꾼 스윙에 적응하느라 공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날이면 항상 이런 의문을 품은 채 연습장을 빠져나왔다.


처음에는 골프에서 이 난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려 했었다. 온갖 골프 관련 유튜브를 보며 머리로 스윙을 이해해보려 하고, 그냥 무턱대고 동작을 따라 하며 공을 맞춰보려 했다. 가끔 공을 잘 맞추면 '오! 이건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어느샌가 내가 편한 방식으로 채를 휘두르고 있었다. 친구들과 파 놓은 단톡방에는 보이는 스윙을 예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도구의 운동 원리로 접근해야 한다며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하는 것 중에 답이 없고 자유형에 가까운 게 또 있었다. 바로 음악이었다. 내가 어떻게 피아노를 연습했더라, 노래를 연습했더라 되짚어보니 금세 답이 나왔다. 내가 치는 피아노 곡이, 내가 부르는 노래가 예술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기에는 너무 거리가 멀지만, 예술에는 답 따윈 없다. 하지만 그것이 빛을 내어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기 위해선,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들이 있다.


만약 누군가 노래를 부르는데, 모든 음정이 반의 반음 정도 떨어져 있다고 생각해보자. 음감이 발달한 사람이건, 발달하지 않은 사람이건 아마 노래가 아주 어색하게 들려 집중할 수 없을 것이다. 혹은 음정이 정확하더라도, 찢어지는 소리가 계속 난다면, 그 노래는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기보다, 고통스럽게 하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피아노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조성진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연주를 듣고 황홀함을 느낄 수 있는 건, 그 엄청난 손가락의 힘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면서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아주 강렬하게 정확한 음을 연주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취미로 하는 나도, 살면서 하농(기초 손가락 연습곡) 1번을 적어도 5천 번은 쳤던 것 같다. 이렇게 손가락을 움직이면 피아노가 이런 음을 내는구나 하면서 피아노 의자에 앉아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쇼팽의 혁명 에튜드를,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를 연습했었다. 원하는 질감의, 정확한 음을 목소리로 내기 위해서 혼자 집에서 스케일 연습을 수십, 수백 번씩 했었다. 뵈지도 않는 목구멍을 상상하면서 이런 식으로 조여볼까, 저런 식으로 조여볼까, 이번엔 여기를 울려볼까 하면서 노력했었다. 그런데도 아직 위에서 언급한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을 얻지 못했다.


아마 골프 스윙은 예술인가 보다. 답이 없다. 단지 꼭 지켜야 할 것들이 있을 뿐이다. 그 지켜야 할 것들이 모여서 정말 최소한의 스윙을 만들고, 그때부터 자유형이 나오는 것 같다. 그러니까 결국 나는, 하농 1번도 제대로 치지 못하는 놈이, 왜 내 연주곡은 예술 같지 않냐면서 불평한 것이다. 피아노를 그나마 들을만하게 치기 위해서 그렇게 손가락을 연습하고도 아직 모자라다 느끼는데, 공은 고작 3-4개월 치고서 내 멋대로 치면 안되냐고 불평했었다. 아마 너무 쉽게 골프를 '안다'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무지로 돌아가서 열심히 하농 1번을 연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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