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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nogoodnw Jul 03. 2021

당신에게

2018년 5월 말이었습니다. 평생 거의 입어본 적도 없는 정장을 입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의 2차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아마 제 기억이 맞다면, 저를 기준으로 왼쪽 맨 끝에는 복싱을 취미로 한다는 여성 분이 앉아계셨고, 면접관들, 당시에는 그저 아저씨로 보였던, 부사장들은 딱딱한 면접장의 분위기를 풀어보려 했는지 웃으며 그 여성분에게 입사 후에도 계속해서 복싱을 취미로 할 것이냐며 물었습니다. 그리고 제 왼쪽 옆 옆자리에는 당신이 앉아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다며, 어쩌다 그리 빨리 결혼했냐는 질문에는 멋쩍게 웃으며 책임을 졌다고 답하는 당신이. 화기애애했던 면접 분위기와는 달리, 면접관들은 제가 답을 할 겨를도 없이 나이가 많다, 학점이 낮다, 영어 성적이 낮다 쏘아붙였었지요. 면접이 끝나고 건물을 나와 친구에게 전화를 걸곤 '그 개새끼들 사람들 앞에서 쪽만 줄 거면 1차 면접 때 왜 뽑았는지 모르겠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찌어찌 운이 좋아 입사를 하게 되고, 신입사원 연수에 참가했습니다. 첫날에는 자기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었고, 둘째 날에는 등산을 했습니다. 아마 제 기억이 맞다면, 둘째 날 아침 등산로 초입에서 당신이 제게 먼저 말을 걸어왔습니다. 2차 면접 때 봤었단 얘기를 하면서. 무슨 얘기를 하면서 산을 올랐는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저는 아주 신이 나서 제 얘기를 늘어놓았을 겁니다. 공장으로 연수를 가서는 둘이서 항상 맨 뒷자리에 앉아 종이접기 유튜브를 틀어놓곤 A4용지를 잘라 정사각형으로 만들고서 이것저것 접어 주변의 동기들에게 나눠줬었지요. 지주사 연수를 가서는 다른 조가 되어서 아쉬워했었고. 지금은 없어진 서울로 테라스의 지하 1층 덮밥 집에서 항상 함께 밥도 먹었었네요.


연수가 모두 끝난 후, 모든 동기들이 팀에 배치받았습니다. 서울에 있는 동기들끼리 처음으로 함께 모여 술자리를 가졌을 때는 둘이서 창가 맨 끝자리에 앉아 맥주와 소주를 들이붓다가 나란히 엎드려서 사진을 찍혔었지요. 회사에서 퇴근하곤 피시방에 들려 게임만 하던 저와는 달리, 당신은 집에 가서 애를 돌봐야 했고, 와이프 눈치도 보아야 했고, 가끔은 새벽에 일어나서 밑반찬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매일매일 함께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정말 많은 날들을 붙어 다녔습니다. 서울역 근처에 여기가 맛있더라, 한 곳은 거진 다 가 본 것 같아요. 휴가를 맞춰 같이 맛집도 가고, 드라이브도 가고, 실없는 얘기를 나누면서 술을 마시다가 조금 취하곤 진지한 얘기를 늘어놓고. 어느 주말 만나 술을 마시다가 제수씨에게 수화기 너머 들은 '현준이 바꿔주세요' 라던 싸늘한 목소리는 아마 잊히지 않을 것 같아요.


저 싸늘했던 목소리를 내던 제수씨가 저를 만나러 동네로 찾아와서, 저는 피시방에서 잠옷 차림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저희 동네로 부부가 왔단 전화를 받고 술자리로 찾아갔었지요. 그날 4시까지 노래방에서 노래를 불렀었어요. 첫 만남에 너무 후줄근한 차림을 제수씨께 보인 것 같아, 아마 며칠 뒤에 나름대로 차려입고 당신네 집에 찾아갔었어요. 소개팅할 때나 결혼식 참석할 때를 제외하곤 끼지도 않는 렌즈까지 끼고서. 그 이후로는 정말 많이 집에 찾아갔었지요. 술에 취한 당신을 둘러메곤 '죄송합니다 제수씨' 하며 집에 갔다가, 다음 날 아침 택시를 타고 회사까지 함께 출근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참 많이도 민폐를 끼쳤네요.


이것 외에도 참 많은 추억들이 있지만, 적을 수 없는 내용도 많고, 제가 굳이 글로 적지 않아도 똑똑한 당신이라면 모두 기억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을 만나선 고등학교 친구들 얘기만 늘어놓던 제가 어느새 당신 자랑을 하고 있고, 그 고등학교 친구들 앞에서도 당신 얘기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친구들에게 '너희가 내게 95점이라면 걔는 110점이다'라고 말할 만큼 어느새 당신은 제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네요. 아마 알고 지낸 만 3년 동안 만나지 못한 날이 50일이 채 안될 것 같은데, 이제는 3년에 50일도 만나지 못할 상황이 되어버렸네요. 너무 아쉬워요. 제 솔직한 감정입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제가 신을 믿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만약 신이 있다면 아마 당신과 만나라고 저를 이 회사에 입사하도록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너무 복 받은 사람이에요. 당신이 그리 맞춰줬는진 모르겠지만, 퍼즐 조각이 정확히 들어맞듯이 제게 정확히 들어맞는 사람을 만났으니까요. 이렇게 제 멋대로이고 괴팍한 사람에게 분에 넘치는 행복을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아마 제가 다시 과거로 돌아가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더라도, 당신과 만나게 된 이 미래를 선택할 것 같아요. 앞으로 제 앞에 어떤 시간이,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이보다 더 즐거울 거라고는 감히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너무나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모자란 사람에게 크나 큰 행복을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민동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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