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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nogoodnw Sep 07. 2021

참으로 고맙고도 슬플 노릇이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함께 산책을 하다 이제야 나를 어렴풋이 알겠다고 말했다. 이전까지는 내가 했던 나의 이야기들을 본인의 잣대 해석했는데, 근래에 와서야 조금은 그 말들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단다. 어려운 인간이라고, 앞으로도 자주 같이 운동하자는 말도 덧붙였다. 이게 운동이냐며 핀잔을 주자 본인은 이만큼 걷는 것도 큰 운동이 된다며. 참으로 고맙고도 슬플 노릇이다.

그다음 날에는, 다른 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본인의 청첩장에 멋스러운 글씨로 ‘항상 지금을 살아야 하는 동우’라고 적어주었다. 내 사는 게 안쓰러워 보였단다. 친구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인생에 임팩트를 줄 무언가를 찾아봐야 할 것 같단다. 친구들 앞에서 ‘얘 인생 뭐같이 사는 거 안 보이냐’며 성까지 내주었다. 일주일에 이틀은 보던 놈이 2달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는데도 내 생각을 했나 보다. 이런 글 쓰고 있다며 또 뭐라 할지 모르지만, ‘이거 회사에서 농땡이 피우는 거야’ 하면 봐주지 않을까. 참으로 고맙고도 슬플 노릇이다.

또 그다음 날에는, 회사 후배 하나한테 인생의 원동력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여러 가지 그럴듯한 것들을 늘어놓다가 뜬금없이 ‘혈중 마라 농도’라고 말했다. 마라탕이 본인의 인생을 움직인다나. 마라탕이 어떤 과정을 통해 본인의 인생을 움직이냐 물었더니 그저 우스갯소리란다. 그러면서도 한 번 더 언급한 것을 보면 우스갯소리도 아닌 것 같지만. 아직도 어떤 방식으로 마라탕이 한 사람의 인생을 움직이는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어쨌든, 이런 무례할 수 있는 질문에 저리 유쾌한 대답을 주다니. 참으로 고맙고도 슬플 노릇이다.

뭐가 그리 고맙고도 슬프냐 한다면, 딱히 이유를 대지 않은 채 고맙고도 슬프다고 말하련다. 고마운 마음이 큰지, 슬픈 마음이 큰지, 혹은 두 마음이 동등한 크기를 가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슬프고도 고맙다’보다는 ‘고맙고도 슬프다’가 좀 더 마음에 와닿는 것을 보니, 지금의 나는 어쨌든 슬픔이 조금 더 주도권을 쥐고 있나 보다.

고맙고도 슬픈 일이 참 많은 시절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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