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imnogoodnw
Oct 05. 2021
게임을 다시 시작했다. 운동과 유튜브 시청으로 시간을 보내기엔 24시간이 너무 길었다. 남는 시간이 많으니 잡다한 생각들로 머리가 가득 차 버렸다. 아주 가끔은 그 생각들이 나를 즐겁게 해주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나를 괴롭게 만들어서, 돌파구가 필요했다. 무얼 해야 아무런 생각 없이 보낼 수 있을까 하다가, 결국 게임을 다시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주로 하는 게임은 ‘롤토체스’라 알려진 ‘전략적 팀 전투’이다. 8명이 게임에 참가해서, 게임 내 주어지는 자원으로 패를 구매 및 강화하고, 구성한 패 묶음으로 서로 전투를 벌여 최후의 1인을 가린다. 게임의 규칙이 조금 복잡하긴 하지만, 결국 그 본질은 짝 맞추기 게임이다. 원하는 패가 술술 나오면 게임도 술술 풀려 나가지만, 패는 항상 무작위로 나오는 데다가, 패의 숫자가 한정되어 있어 항상 원하는 패 구성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최후까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작위로 나오는 패들을 잘 조합하여 상대에 맞게 본인의 패 묶음을 구성해야 한다.
무작위성을 가진 게임들이 그렇듯 선택에 정답은 없다. 누군가는 전투에 계속 패배하면서도 원하는 패들만 사 모아 결국에는 역전을 도모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누군가는 무작위로 나오는 패들을 잘 조합해 후반까지 이득을 굴리는 전략을 사용한다. 최상위권 중에는 전자를 선호하는 사람도, 후자를 선호하는 사람도 존재하니 전략의 선택에 대해서는 ‘틀리다’보다는 ‘다르다’란 말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정답이 없다 보니, 게임에 나 자신이 진하게 묻어난다. 선택의 순간마다 나의 편향이 어느 쪽으로 치우쳐 있는지, 게임의 결과가 정해지는 지점에서 나의 승부 호흡은 어떤지 매 판 확인할 수 있다. 역시 프로를 하기엔 재능이 부족하다는 것도 실감한다. 비록 게임에 불과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장단점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왜 원하는 패가 안 나오냐며 원망스럽게 모니터를 바라보는 일이 대다수이긴 하지만, 어쨌든 게임이라는 창을 통해 ‘나’에 대해 조금 더 견고히 알아가는 느낌이 든다.
아무런 생각 없이 보내고자 게임을 시작했는데, 결국 또 다른 생각이 나를 지배한다. 나와 가까운 주변 사람들은 생각을 좀 멈추고 살라 말하는데, 참 쉽지가 않은 일이다. 무언가 본질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답은 알고 있는데, 답을 이행하기엔 그 견고히 알아낸 ‘나’라는 사람이 참으로 부족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시작 버튼만 누른다. 나에 대해서는 점점 더 알아가고 있는데, 점점 답에서는 멀어지기만 한다.
패를 찾기 위해 자원만 허공에 날리고 있다. 전투에서 계속 패배하며 이미 다 팔려버린 좋은 패를 기다리는 기분이다. 체력은 거의 다 소진되었는데, 쓸만한 패가 나와주질 않는다. 어째서 무작위로 나온 패들을 잘 조합하지 않았는가 한탄만 늘어놓는다. 시간은 비가역적이란 말이 참 잔인하다. 게임이라도 술술 풀리면 잠시나마 기분 좋으련만, 이런 기세에서는 분명 다른 플레이어에게 잡아먹히고 말 것이 뻔하다. 또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모니터만 바라보겠지, 길을 찾지 못한 나를 원망하지 않고. 턴이 지났다. 또다시 새로운 패를 마주한다. 막막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