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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nogoodnw Oct 09. 2021

친구가 축가를 부탁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주헌이 고등학교 친구 민동우라고 합니다. 이 좋은 날 제 목소리로 친구의 첫출발을 축하해줄 수 있다는 것이 참 감격스럽습니다. 저희 친구 무리 축가는 이미 전부 저로 정해졌다는데, 정작 제 축가는 누가 불러줄지 모르겠네요. 축가 받을 일이 있을는지도 잘 모르겠지만요.


저와 주헌이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났습니다. 벌써 15년 정도 지났네요. 제가 서른을 조금 넘겼으니,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알고 지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모의고사 날이었는데, 주헌이가 수리 모의고사 답을 알려달라고 했었습니다. 본인이 수학 과외를 시작했는데, 공부는 안 했지만 어쨌든 이번 모의고사를 잘 봐야 엄마한테 혼나지 않는다면서요. 어머니, 이제야 죄송하다고 말씀드립니다. 기억하실진 모르겠지만, 그때 성적, 주헌이 실력이 아니었어요. 어쨌거나 주헌이는 그 모의고사에서 수리영역 반 2등을 했고, 덕분에 저는 저기 있는 민재에게 아주 크게 욕을 먹었습니다. 민재 등수가 하나 밀렸거든요. 아마 그때부터 주헌이랑 가까워지지 않았나 싶어요.


3학년 때도 저희는 같은 반이 되었습니다. 2학년 때 함께 친했던 호지, 진욱이도 같은 반이 되었어요. 저희 반은 선생님들에게 아주 악명이 높았습니다. 뺀질거리는 애들만 모아놓았다고요. 그리고 그 악명을 만든 사람들이 다 같이 친해져서 지금의 친구들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15년가량을 친형제보다 더 가깝게 지냈어요. 오죽하면 20대 후반 즈음에, 친구들과 하도 자주 만나서 제 동생이 친구들이랑 결혼했냐고 할 정도였거든요. 여하튼, 이런 친구가 결혼을 하다니, 결혼하는 주헌이도 아주 이상한 감정을 느끼겠지만, 저도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드네요.


주헌이는 균형감각이 좋은 사람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서 아주 중요한 몇 가지 요소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중 하나가 저 균형감각이거든요. 제가 오래 보아온 주헌이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것을 챙길 줄 아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저희 친구 중에 대학 입학도, 취업도, 그리고 결혼까지도 제일 빨리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주헌이는 아주 사려 깊고 정이 많은 사람이에요. 친구들의 작은 소식도 놓치지 않고 챙겨두었다가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말로 걱정을 전해요. 덕분에 큰 위로를 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도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주헌이가 해주었던 말을 종종 인용하곤 해요. 이 자리를 빌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많은 요소들을 고려해볼 때, 제가 감히 단정 짓긴 어렵습니다만, 곧 부를 축가의 가삿말처럼, 주헌이는 제수씨와 행복할 거예요. 그러니 어머님, 아버님, 그리고 효정 씨 어머님, 아버님,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주헌아, 15년간 네 친구여서 참 많이 행복했다. 앞으로도 나랑 친구 하자. 결혼해도 따돌리지 않고 술자리는 껴줄 테니 걱정 말고 허락만 맡으렴.


제가 축가 할 때 좀 많이 떠는 편이라 원래 신랑 신부를 보지 않고 노래를 부르거든요, 오늘만큼은 신랑 신부 얼굴을 보며 축가를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결혼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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