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가 0인 것도 있으니까.

글을 적는 일은 매우 고되다. 글감을 떠올리는 것, 한 문장 한 문장을 만드는 것, 그리고 만든 문장들을 배치하는 것 모두 상당한 피로감을 동반한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머리도 쥐어뜯고, 담배도 태운다. 그렇게 고되게 초안을 완성해도, 다시 읽어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꼭 튀어나온다. 별 수 있나, 참고 또 고쳐야지. 그렇게 살점을 깎고 붙이다 보면,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한 편의 글이 완성된다.

이 고된 작업은 여러 보상들을 가져온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해냈다는 성취감도 얻을 수 있고,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역시 글을 적는 일의 가장 큰 보상은, 순간순간의 나를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글은 마치 DNA 같아서, 글을 적은 나에 대해 아주 많은 정보들을 담고 있다. 이전에 써놓은 글을 찬찬히 읽다 보면, 이 당시의 내가 주로 쓰던 단어, 생각들이 아주 선명하게 드러난다. 내 고집스러운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꽤나 만족스럽지 않았다면 글을 매조지지 않았을 텐데, 지금의 내가 보는 그 당시의 글은 새로 쓴 글의 초안을 읽는 것 마냥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꼭 튀어나온다. 그래도 이번엔 수정하지 않는다. 모두들 내 순간순간의 소중한 기록들이니, 그 정도의 흠은 기꺼이 안을 수 있다.

그간 썼던 글들을 모두 읽어보니, 글이 아주 많이 변했다. 주로 쓰는 단어들도 변했고, 생각도 꽤나 많이 변했다. 굳이 그 변화분을 이 위에 적고 싶지는 않다. 이 DNA를 해석하는 것은 나만의 영역일 테니, 오롯이 나만의 즐거움으로 놔두고 싶다. 그저 순간순간의 나를 읽으려 했는데, 아마 나 자신을 미분하고 있었나 보다. 이 글도 언젠가 미래의 내가 다시 읽을 날이 오겠지. 그러면 분명, 그때의 나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을 찾아낼 것이다. 변화가 0인 것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처럼 이 기록을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다. 변화가 0인 것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