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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nogoodnw Nov 25. 2021

이상하게 보지 말아 주세요.

아홉 살 때였나, 피아노를 치고 있던 내게 동생이 물었다. 오빠는 왜 피아노 칠 때마다 눈을 감고 목을 뱀처럼 움직이냐고. 음악을 느끼는 거라고 답을 했던 것 같은데, 사실 그때의 나는 음악을 느끼긴커녕 악보에 쓰인 대로 손가락을 움직이기도 참 벅찼다. 지금에서야 솔직히 고하자면, 그저 티브이에서 본 피아니스트들의 몸짓이 멋져 보여 따라한 거였어. 민동선 양은 기억도 못하겠지만.

지금도 아마 나는 눈을 감고 뱀처럼 목을 이리저리 비틀면서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들을 거다. 확실해. 습관이란 건 쉽게 고쳐지지 않으니까. 영상으로 찍어 확인해보지 않아도, 분명 지금의 난 저렇게 움직일 거다. 몇 년 후의, 혹은 몇십 년 후의 내가, 지금처럼 그때 그랬던 건 음악을 느낄 줄 아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였어- 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음악을 연주하고 듣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어반자카파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두 사람이 부르는 3도 화음이, 또 다른 둘이 부르는 6도 화음이, 그리고 셋이 함께 내는 소위 '도-라-도' 화음이 내 상상 속 피아노에서 연주된다. 탄탄한 발성을 보유한 셋이 내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얼마나 가슴을 울려야, 얼마나 목구멍의 압력을 버텨야, 얼마나 가볍게 공기를 띄워야 이런 소리가 날지 내 감각 기관을 움직여가며 상상한다. 백건우 씨의 피아노 독주 앨범을 들을 때면, 내 손가락은 내 핸드폰을, 책상을 피아노 삼아 그 음들을 누르고 있고, 오케스트라 연주라도 들을 때면 켤 줄도 모르는 현악기의 음들을, 불 줄도 모르는 관악기의 음들을 그리는 연주자가 된다. 그리고 그런 상상을 하다 보면, 여지없이 내 눈은 감기고 목은 비틀어진다. 내가 눈을 감고 목을 비트는 게 아니고, 나도 모르는 새에 음의 향연들이 나를 그렇게 만든다.

민동선 양에게 다시 말해야겠다. 아마 아홉 살 무렵의 나는 음악을 느낄 본격적 준비를 했던 거라고. 피아니스트가 멋져 보여서 뱀처럼 목을 비튼 게 아니라, 적어도 33이 가까워진 민동우가 즐겁게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몸을 풀고 있던 거라고. 이상하게 보지 말아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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