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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nogoodnw Dec 07. 2021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출근했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아침이었다. 알람을 10분쯤 넘긴 6시 45분경 일어나 샤워를 하고, 대충 널브러진 옷을 주섬주섬 입곤 어둑어둑한 거실로 나섰다. 평소처럼 현관에서 신발을 발가락으로 낚아채고, 복도에 나와 발을 온전히 넣은 다음 계단을 내려갔다. 오른쪽 발을 신발에 넣을 때, 평소와는 달리 오래된 신발을 신는 것처럼 신발을 구겨 신는 듯한 느낌이 났지만, 이제 이 신발도 조금은 오래 신었나 보다 하고는, 늘 그렇듯 별생각 없이 양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오늘따라 내가 탄 마을버스는 참 느릿느릿 움직였다. 충분히 신호를 받을만한 거리에서도 기사 아저씨는 아주 천천히 운행해서 빨간 불을 맞았고, 걸어서도 족히 5분이면 갈 홍제역 1번-3번 출구 사이는 차들로 꽉 막혀 통과하는 데에 10분은 소요가 된 것 같다. 밖을 한번 스윽 본 다음, 속으로 ‘앉아 가서 다행이다.’ 하고는 재생 중이던 유튜브 음악 영상에 다시 눈길을 돌렸다.  


갈아탄 시내버스는 마을버스와 달리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다. 겨우겨우 사람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는 새로운 유튜브 영상을 틀었다. 시내버스는 지각할까 걱정하는 내 마음을 아는 듯 아주 빠르게 달렸고, 어느새 다음 정거장은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서대문역 정거장이었다.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여기서 내렸으면 좋겠다, 여기면서, 버스가 멈추길 기다렸고, 내 앞의 사람은 내 바람처럼 일어나 하차할 준비를 했다. 혹여나 급하게 자리에 앉으려다 그 사람의 발을 밟진 않을까 내 시선은 아래로 향했고, 그 순간, 짝짝이 신발을 신고 있는 내 발을 보았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나는 서서 굳은 채로 내 신발을 계속 바라보았다. 자리에 앉겠다는 생각은 달아난 지 오래였고, 오만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부터, 집에 다시 다녀와야 하는지, 신을 새로 사야 하는지 등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 마구마구 떠올랐다. 일단 동생한테 현 상황을 말하니, 동생은 올해 들은 얘기 중 제일 웃긴 얘기라며 카카오톡 너머로 킥킥 웃어댔다. 신발이 두 켤레밖에 없는 사람이 어떻게 그걸 짝짝이로 신을 수 있냐며, 오빠는 자기 생각보다 더 신기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친한 친구한테 말을 하니, 여섯 살짜리 자기 애도 짝짝이 신발 신기면 ‘아빠 뭐 하는 거야’라 한다고 말했다.


버스에서 내려 사무실에 도착할 때까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신발만 계속 쳐다봤지만, 당연히 그 누구도 짝짝이로 신발을 신은 사람은 없었다. 아마 사람들은 내가 짝짝이 신발을 신었는지도 잘 몰랐겠지만, 괜스레 내가 창피해져서, 평소보다 빠른 발걸음으로 사무실에 올라왔다. 상무님께 논의 드릴 일이 있어서, 자리로 찾아뵈었더니, 그 새 알아보시곤 부문에 다 들리도록 놀리셨다. 현실에 관심이 없어도 너무 관심이 없는 것 아니냐며 아주 크게 웃으셨다.


내가 현실 감각이 떨어진단 건 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내 얘기를 할 때면 ‘나는 현실 감각이 참 떨어져.’라는 말을 빼놓지 않고 말했었고, 어떤 면에서 그리 현실 감각이 떨어지냐 묻는 사람에게는 이런저런 예시를 들어가며 설명 해댔었다. 이에 덧붙여, 현실 감각은 어린아이 수준이지만, 다른 몇몇 면들이 늙은이 같아 평균을 내면 내 나이인 30대 초반으로 수렴한다고 말해왔다. 게임 카드처럼 내 능력치를 오각형으로 표시한다면 정오각형이 아니라 변의 길이가 아주 많이 차이 나는 오각형이 될 거라고, 어떡하면 이 불균형을 맞출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한다고도 했다. 내 유일한 장점은 다른 사람보다 메타 인지가 뛰어난 것이라며, 그런 오각형을 지닌 것이 자랑인 마냥 서슴없이 내 치부를 드러냈다.


아마도 나는 아직 메타인지가 많이 부족했나 보다. 나는 내 상상 이상으로 이상한 사람이었고, 어린아이 수준은 되는 줄만 알았던 현실 감각은 아마 그보다 어린 신생아 수준이었나 보다. 내가 가진 오각형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불균형적이었다.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온 그 와중에 ‘신발이 두 켤레가 있을 때, 두 신발의 착용감이 동일하고 육안으로도 분별 불가하다면 짝짝이로 신을 확률은 50%나 된다’와 같은 말이나 하고 있는 걸 보니, 더더욱 그런 듯하다. 어쩌면 불균형을 맞추고자 한 고민들이 허사였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말만 번지르르했을지도 모르고. 아직은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출근한 충격이 남아있어서, 생각이 잘 정리되진 않는다.


그래도 오늘의 이 상황이 참 즐겁다. 계획에 없던 글을 쓰게 해 줄 글감도 얻었고, 그래도 뛰어나다 생각했던, 나의 부족한 메타인지 수준도 새로이 인지하게 되었다. 본래 신발을 하나 새로 살 생각도 하고 있었는데, 부족한 나의 추진력을 대신해 신발을 사지 않곤 못 배길 이유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얘기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오늘 하루 웃음보 터졌다며 내가 본 어느 때보다 크게 반응해주었다. 의도치 않게 신발장에 짝짝이로 남아 있을 내 신발들 덕에, 제대로 된 짝을 신고 나온 날보다 즐거운 하루를 보내 기분이 참 상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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