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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nogoodnw Dec 12. 2021

친구가 나에 대해 글을 써 주었다.

살면서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쓴 글을 받을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연인이 기념일이라고 써준 편지는, 물론 나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겠지만, 그보단 서로의 사랑을 속삭이는 밀어들로 가득 차 있을 것 같다. 결혼식 때 부모님께서, 혹은 친구가 읽어줄 축사에도 나에 대한 얘기는 있겠지만, 그보단 결혼하는 커플에 대한 축하와 당부의 말이 주를 이룰 것 같다. 오롯이 '나'를 주제로 쓴 글을 받을 일이 참 흔치 않다. 내 장례식 정도 되어야 그런 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면 나는 이미 살질 못했다.

친구가 고맙게도 '나'에 대한 글을 적어 주었다. 글의 내용이나 완성도는 차치하고, 나라는 인간에 대해 이런 관심을 가져주어서, 그리고 그것을 수고스럽게도 문자로 표현해주어서 참 감사하다. 죽어서나 해볼 법한 경험을 산 채로 시켜주었으니, 살아있음을 경험시키기 위해 구를 데리고 동네라도 걸어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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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독특'한 친구가 한 명 있다.

내가 생각하는 '독특'이란 것은 '흔치 않음'의 의미가 강조된 개념이다.


인사쟁이 삶을 살아오며, '사람'에 대한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하고, 정의하는 것이 일상인 내게.  누군가를 독특한 사람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척 흥미롭지만, 드문 일이다.


내가 가진 사람 데이터에 잘 없는 그는 바로 나와 15년 된 고등학교 동창이다.


 한결같이 독특하고 이상한 친구 녀석과 나는 서로 간 공통점이 많지 않다. 다만, 몇 안되는 공통점 중 하나는 바로 조깅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긴 다리와 넓은 보폭으로 빠르게 걸으며, 다리가 짧은 나를 힘들게 하지만서도.

몇 시간 동안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것은 내겐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다.


그러던 올해 여느 여름날 있었던 일이다. 평소처럼 함께 조깅을 하던 중 친구를 바라보는 나의 인식이 크게 변화하였다. 나의 관점에서 해석하지 않고, 친구의 말을 있는 그대로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그간 친구의 모습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 자연스레 마음으로 공감해주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15년동안 바라봤던 친구는, 어떤 모습이었나?


되돌아보니, 몇 가지 꼭지가 존재했다.



1) 고등학생 민동우 - 싫어하지만, 그 누구보다 잘했던 공부

2007년 3월 개학실 날. 키 크고 안경을 쓴 친구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첫 인상은 평범한 아이.

그런데 웬걸. 교탁 정중앙 맨 앞좌석에 앉아, MP3 엠씨더맥스 노래를 들으며 혼자 리듬을 타고, 다색팬을 돌리며 수학문제를 푼다.

같은 반 생활을 하며 제법 친해진 후 알았다. 피아노와 노래에 재능이 있고. 게임과 바둑을 잘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 대비 하나의 삐죽한 특이점이 있었는데, 이는 바로 상식적인 수준에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IQ(지능)이었다.


공부를 하지 않고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을 두고,

많은 선생님들과 학부모, 친구들은 새벽에 공부한다느니. 몰래 과외를 한다느니 등 쓸데 없는 분석과 추측을 쏟아냈지만.

나는 안다. 그는 정말 아무것도 그는 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래서, 당시 내가 생각하는 공부 잘하는 요인에 있어 '노력'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는데.

'지능'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참으로 신기했다.

"어떻게 저렇게 싫어하는 공부를.. 어쩜 저렇게 잘할 수 있지..?"

독특하네..

그렇게, 그는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래서 나는 당시 서울대에는 다 저런 아이들만 있는 줄 알았다. 지나고 나니, 이 친구가 서울대에서도 특이한 케이스였음을 알았다.



2) 대학생 민동우 - 한결같이 쿨한 K팝스타

2011년 겨울, 군대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케이팝스타'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라고 한다.

JYP-YG-SM 트레이닝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선착순으로 정하는데, 본인은 JYP에게 코칭받고 싶었으나 적극적으로 뛰지않고 소극적으로 걸어간 탓에 그 기회를 놓쳤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방송을 보니, 다른 참가자들 다 뛰어가는데 혼자 맨 뒤에서 걸어가고 있고.

그렇게 그는 보아의 트레이닝을 받아 Top 50에 들었다. "줄 수 있는게~~" 3am? 맞나? 여튼.

대학에 가니, 이젠 별 짓을 다하는구나 싶었다. 아니, 지금 생각해보니 역시 공부 빼고 다 좋아하는구나 싶다.

그리고, 역시 다재다능한 친구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근데.. 방송에서 천천히 걸어간 모습.. 한결같이 참 쿨하고 독특해.. 변함이 없어.



3) 취준생 민동우 - 부모님으로부터의 독립

대학에 입학하여 행정고시를 준비하던 친구는 7년동안 만났던 이와 이별하였다. 그 일은 친구에게 꽤 큰 충격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친구는 행시준비를 그만두고, 취업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최소의 노력으로 문과대에서 가장 가기 어렵다던 석유회사 기획실 직무로 취업을 했다. 근데, 사실 적은 Input으로 Output을 최대화 했던 그 모습에는 그닥 놀라지 않았다. 10년 넘게 늘상 그랬었으니깐.


반면에, 당시 취업준하던 쯤 친구가 했던 이야기가 내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것은 바로 친구가 행시를 준비하던 중 어머님께 "이제 이것까지만 엄마가 원하는 대로 살거야" 라고 말한 것이다.


조금씩 지쳤던걸까. 아니면, 어른이 되려고 했던걸까. 그땐, 친구가 어른이 되어가는 성장통을 겪는 과정이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좀 지나고보니. 그건 아니었다.ㅋㅋ 금방 고등생 시절 민동우로 돌아왔다.



4) 직장인 민동우 - 자신만의 기준이 존재하는 사람

나는 민동우란 친구가 그냥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적이 있다.

오죽하면 어릴 때 꿈이 집에서 누워있는 것이라고 했으니.


그런데, 그게 아님을 알았다.

그냥, 친구는 '열심히'에는 관심 없고, 자신의 높은 기준을 마음 속에 가지고 사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본인 이름으로 책임지고 하는 일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그리고 잘해가는 것이 이를 보여준다.

그런 높은 자존감을 친구의 회사에서도 아는 듯 하다.

천재 소리를 들으며, 지내는 그이지만,

얼마 전 과장을 약올렸단 얘기를 해주는 걸 볼 때면, 역시 얘는 나와는 다른.. 독특한 인간이구나 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본인만의 기준이 뚜렷한 친구니깐 말야.


5) 30대 아저씨, 민동우 - 그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는 사람

나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줄 정도로 가깝고 오랜 친구다.

근데 내가 그리 좋은 친구가 아니었구나 느꼈던 적이 있다.

이 글을 쓰게 된 첫 시작에 이야기한 것, 올 여름 그때 일이다.

왠지 모르게, 그 친구가 이야기 하는 말이 온전히 이해되기?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에이 그건 그냥 겸손한 말로 하는거잖아~~"

이게 아니었구나를 온전히 받아들였고. 왜 이 친구가 자신의 삶에 있어 친구를 무척 중요하게 여길 수 밖에 없는지. 왜 그런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관계에 있어 영향의 주고 받음이 있다면. 난 친구에게 많은 좋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나는 친구에게,

좀 더, 마음 편히. 친구의 삶을 위해주고. 친구를 온전히 이해하고. 더욱 더 진심으로 대해주고 싶다.


지난 15년 넘게. 친구에 관해 변치 않는 사실이 있는데,

아직도 나는 이 친구보다 더 나은 지능을 가진 이를 살면서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이 친구보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도 사실 잘 보지 못했다.


그래서, 앞으로 친구가 행복해지는데, 행복을 찾는데 친구로서 보탬이 되는 존재가 되어주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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