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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nogoodnw Dec 27. 2021

2021년을 마무리하며

1.     21년은 내게 풀어내기 참 어려운 한 해였다. 어릴 때부터 분야를 막론하고 풀어야겠다 마음먹은 문제를 푸는 것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정의조차 내리질 못하니 내 자신감에는 공허함만 가득 차버렸다. 남들 눈에는 그저 음울한 분위기를 풍기며 느릿느릿 걸어 다니는 사람으로 보였겠지만, 그 속은 해결되지 않는 불안함에 언제나 부글부글 대고 있었다. 감정은 격해져서, 즐거울 땐 과하게 즐거웠고, 슬플 땐 과하게 슬펐다. 몇몇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무던함을 강점으로 여기며 살아왔는데, 상정한 범위 밖의 즐거움과 슬픔은 나의 강점을 비웃기라도 하듯 매 순간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2.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21년을 시작할 당시 목표로 삼은 것들이 있었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 기껏해야 ‘~~ 하기’ 수준이거나, 혹은 내 평생 숙제로 삼은 ‘어른스러운 사람 되기’의 연장선에 불과한 것뿐이었지만, 어쨌든 하고 싶은 일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꾸준히 글쓰기였다. 아쉽게도, 다른 목표들은 연초 계획한 바를 이룬 것이 거의 없으나, 올 한 해 동안 짧게나마 10편이 넘는 글을 적었으니 글쓰기만큼은, 어느 정도 목표한 바를 이루었다고 작게나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3.     몇 년 전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엄마랑 삼촌이 장례식장에 와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는 글을 작성한 적이 있었다. 삼촌이 쓴 글을 읽고서, 나는 ‘와 삼촌 글 잘 쓴다.’라고 생각했었다. 삼촌의 글은 참 삼촌을 닮아있었다. 정갈하고, 군더더기 없고, 많이 배운 어른이 쓴 글 같았다. 그리고 엄마가 쓴 글을 읽었다. 아마 나는 울었던 것 같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엄마의 글에서는 대가의 내음이 났다. 다섯 살 적 멋모르고 읽던, 빨간 원고지에 쓰인 휘날리는 필기체의 향수가 그대로 전해졌다.
 
 

4.     올해 초였나, 삼촌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함께 술을 마시면서 삼촌에게 이 일을 얘기한 적이 있었다. 분명히 삼촌 글도 되게 잘 쓴 글인 것 같은데, 엄마 글은 아예 차원이 달랐다고. 그런데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삼촌은 얼굴이 벌게져서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말하고 있는 조카에게 대답했다. 삼촌은 머리로 글을 쓴 거고, 엄마는 가슴으로 글을 쓴 거라고. 그렇구나, 하고는, 별말 없이 다시 술잔을 비웠던 것 같다. 내 글은, 물론 그 수준에 비할 바 못 되지만, 삼촌이 적은 글 같았다. 그저 겨우 비문을 적지 않는 것에 급급한, 어거지로 연결해놓은 반상 위의 흩어진 돌들 같았다. 그러니까, 내 글에는 가슴으로 쓴 맛이 없었다.
 
 

5.     꾸준히 써온 글에는 변화가 있었다. 엄마처럼 대가의 내음을 머금진 못했지만, 가슴 깊숙한 곳에서 뽑아내진 못했지만, 이전보다 가볍게 글이 쓰였다. 격동의 21년과 겹쳐서 너무 기쁜 나머지 친한 사람들에게 자랑도 하고, 글로 남기기도 했다. 평소의 나였다면 왜 글이 변했는지 고민했겠지만, 그리고 그것이 마음속 한편에 단단히 자리 잡은 무언가 때문인 것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당시에는 그 무언가를 딱 잘라 말할 수도 없었거니와 글이 변했다는 사실의 도수가 너무 강해서 ‘왜’같이 제정신일 때나 떠올릴 수 있는 문법은 도저히 생각해낼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그때의 나는 저 무언가 덕분에 올해 들어 가장 마음이 무거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알지도 못한 채, 점점 무거워진 마음으로 점점 가벼워진 글을 쓰고 있었다.
 
 

6.     1차 백신을 맞은 어느 을씨년스러운 가을날이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32년 간 진득이 앉아서 본 책이라곤 만화책밖에 없는 내가 교보문고에 들러 이어령 씨의 책을 집었다. 그 책은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딸에게 적는 편지글이었다. 감히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러나, 이어령 씨의 문장은 덤덤하면서도 따스했다. 무너지는 마음을 쌓고, 또 쌓으면서 이어령 씨가 얻어낸 문장은, 골수에 사무친 슬픔 가득한 문장이 아니라, 어렸을 적 할아버지가 내 옆에 앉아 도란도란 말해주던 이야기에 가까웠다. 그 이야기가 끝날 무렵, 나는 왜 이어령 씨의 문장이 덤덤하고도 따스했는지 나름대로 답을 내릴 수 있었다. 이어령 씨는 슬픔을 슬픔으로 받아들이고, 기쁨을 기쁨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 마음속 한편에 자리 잡은 무언가에 대해 전보다는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7.     가을날 불었던 바람은 혹시 신의 섭리가 아니었을까. 이어령 씨의 책을 다 읽어갈 무렵, 회사 좋아하는 선배와 점심 약속을 잡았다. 부대찌개를 뜨면서, 선배에게 내 마음을 무겁게 하는 무언가를 나의 언어로 설명했다. 잠자코 듣던 선배는 본인이 방황하던 시절 읽었다며 베르그송의 ‘시론’을 권하곤, 후배한테 베르그송 책 한번 선물해보자며 다짜고짜 결재 버튼을 눌렀다. 솔직히 말해서, 베르그송의 책은 너무 어려웠다. 한 장 한 장 넘기는 일은 고난에 가까웠고, 간신히 다 읽어낸 지금도 ‘내가 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다만, 내가 이 일련의 흐름을 신의 섭리라고 말하는 까닭은, 이어령 씨의 덤덤하고 따스한 문장이 나를 짓누르던 내 마음속 회색 빛 무언가에 빛을 비추었고, 베르그송이 시론의 1장에서 말한 ‘질적인 것에 대한 양적 분석이 가져오는 오류’라는 말이 완연히 그것을 존재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8.     아마도 그것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쩌면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을 거다. 무엇이든 ‘왜’를 풀지 않곤 배기질 못했으니까. 그리고 아주 고맙게도, 세상은 대부분의 경우 만족할만한 답들을 내주었지만, 그와 동시에 어렴풋이 ‘왜’라는 문법이 통용되지 않는 세계가 있음도 보여주었다. 아마 내 무의식은 이미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다만 내가 참으로 모자란 인간이어서, 그리고 참으로 오만한 인간이어서, 헛된 지식으로 가득 차있는 강력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다른 계에서 ‘왜’를 말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것이 가진 회색 빛은 짙어져서, 나는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오래전에 까먹어버렸다. 그리고 결국 32살의 나는 조금 많이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되었다.
 
 

9.     그래도 21년의 격동기 덕분에, 나는 그 회색 빛 무언가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아직은 그 이름이 좀 길어서 부르기가 어렵지만, 아마 내년의, 그리고 내후년의 나는 조금 더 그 이름을 쉽게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이것의 이름을 크게 외칠 수 있는 날, 나는 내가 바라던 어른의 모습이 되어 있을 거다. 나는 가슴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될 거다. 나는 기쁨을 기쁨으로, 슬픔을 슬픔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거다.
올해 초 내가 글을 쓸 수 있도록 내 등을 떠밀어준 친구에게 감사하며. 수많은 대화들 속에서 내 안의 무언가를 느낄 수 있게 해 준 친구들에게 감사하며. 신의 섭리인진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나를 성장시킨 그 시간들에 감사하며. 그리고 어려운 시기를 버틴 나에게 감사하며.

작가의 이전글 친구가 나에 대해 글을 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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