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mnogoodnw Dec 21. 2022

d+11894

오랜만에 글자 없는 저녁이다. 달아나는 종이를 따라잡기라도 하려는 듯 쉼 없이 달린 나는, 바람이 쌩쌩 귀를 스치는 탁 트인 길이 아니라 기껏해야 숫자나 올라가는 트레드밀 위를 뛰고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헉헉 소리를 내며 흐르는 땀을 즐기고 있다. 얼마나 즐거운 소리인가, 헉헉.


이 챗바퀴는, 내가 조절하진 않지만 제 멋대로 오르막길을 제공하고, 맘껏 뛰지 못하게 막기도 하고, 또... 중요한 것은, 분명 내가 선택했다 여겼으나 사실 나는 이 안에 종속된 인형에 불과한 것. 그래도 인형 주제에 헉헉 하며 땀도 흘릴 수 있으니 이것 재밌다.


언제까지 나를 달리게 할지는 모르겠다. 내가 달리는 줄 알았으나 사실은 달리게 만드는 것이었으니, 정지 버튼 역시 제 멋대로 눌릴 게다. 그래놓고는 또, 내 의지로 눌렀다고 말하겠지, 착각하겠지. 그래도 괜찮다. 헉헉 거리며 땀을 내니까. 혹시 오늘 저녁은 Runner's high 아닐까? 이 감정은 오롯이 나의 것인가? 모르겠다. 그래도 내 것인 것 마냥 즐겨보자. 오랜만에 글자 없는 저녁이다.

작가의 이전글 d+1189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