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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nogoodnw Dec 22. 2022

참으로 이상한 한 해였다.

2022년을 마무리하며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라 하면, 한 편의 소설이 시작된다고 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한 해를 보내는 에세이는 어떻게 시작하면 될까? ‘참으로 이상한 한 해였다.’라 하면 되려나.

22년을 보내기 위한 글을 작성하기 전에, ‘2021년을 마무리하며’라 제목 붙인 글을 읽어보았다. ‘21년은 내게 풀어내기 참 어려운 한 해였다’ 이렇게 시작했구나. 21년은 당시의 내게 풀어내기 어려운 한 해였나 보다. 주욱 읽어보니, 글이 참 유려하다. 술술 나아가는 데다가, 딱히 어려운 단어를 쓰지 않았는데도 아주 화려하다. 지금 쓰라하면 저렇게는 못 쓸 것 같다. 별 수 있나. 지금의 나만이 쓸 수 있는 게 있을 터이니 세월이라는 이자 붙여 교환했다 생각하자. 등가인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이상한 한 해였다. 비움을 말하면서, 터지기 직전까지 부푼 해였다. 생산적인 삶을 부러워한다면서, 누운 채로 영혼만 뻐끔뻐끔 뱉어내던 인생과는 조금 달랐다. 작년에 썼던 것 마냥 ‘섭리’ 따위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무엇에 홀린 것 마냥 책을 읽어댔고, 틈만 나면 골프를 치러 다녔고, 생애 처음으로 영어 단어장을 독파했다. 물론 가장 큰 사건은 따로 있지만, 그건 적고 싶지 않으니 생략. 적지 않을 뿐 사실 흩뿌려져 있을 게다. 내 삶에 그런 것처럼.

이상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이상했고 하니, 터지기 직전까지 부푼 것이 아니라, 혹은 터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채움이 외려 비움이 된 듯하여 이상했다. 뻐끔뻐끔 마음을 피워봐야 스멀스멀 회색만 가득 찼었는데, 모르긴 몰라도 채움과 비움은 이 체계 하에서는 반의 관계가 아닌가 보다. 엄밀히 말하면 복잡한 얘기일 것이 분명한데, 체계란 것은 이형인 제2의 체계를 허용함에서 세워진다 하였으니, 굳이 내가 이러쿵저러쿵해보아야 의미 없을 것이다. 엄밀함이 무엇인가? 결국 비워진 것. 아이고 복잡하다. 머리 아프다.

그렇게 22년이 지나간다. 잊히지 않을 33세의 내가 스러진다. 어쨌건 한 문장 남겼으니 된 것 아닌가. 내년의 내가 보곤, 말도 안 되는 말을 남겨 놓았구나, 할지라도, 그 또한 이자를 붙여 교환한 것일 테니 괜찮다. 등가이든 아니든 문제 되지 않는다. 애초에 값을 매길 것이 아니다. 올해의 내 글은, 유려하지 못하다. 작년의 내가 보았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풀어내기 어려웠으니 외려 이 공허한 말들은 지금보다 잘 풀어냈을지도.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묻고 싶다.

채움과 비움 말고 즐거움이 남았으면 좋겠다. 올해도 실은 즐거웠다. 나다워서 즐거웠고, 나답지 않아 즐거웠다. 한 해를 간신히 살아낸 것이 고맙다. 철학적인 이야기는 결국 내 삶으로 귀결되어야 가치가 있다. 가치 있는 한 해였구나. 많이 슬펐다. 슬픔은 아득하다. 턱이 떨리다가, 힘이 빠져 입을 벌리게 된다. 침, 눈물, 콧물 온갖 것들이 아래로 흘러내린다. 아득함을 품은 것들은 모두 냄새나고, 찐득찐득하고, 으- 하지만, 그래도 내 삶이다, 가치 있다. 슬픔과 즐거움은 반의 관계가 아닌가 보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다만 한 문장 안게 되었으니 괜찮다. “여기서 우리들은, 어떤 지점에서 – 심지어 '정당한’ 의심이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해질 곳에서 – 완전히 의미 없음이 언어놀이를 반드시 잘못되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을 통찰해야 한다. 제2의 산수와 같은 그런 어떤 것도 실로 존재한다. ‘이러한 시인이, 내가 믿기에는, 모든 논리 이해의 근저에 놓여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봐야 놀이다. 즐거운 언어 놀이. 삶이 즐거워 언어 놀이도 즐겁다. 가히 유희라 말할 수 있다.

참으로 ' '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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