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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nogoodnw Dec 2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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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진짜 나이를 좀 먹었나 봐요. 몸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아, 생각해 보니 '예전 같지 않다'라고 적으려면 예전이 존재해야 하고, 나의 예전에 대한 표상을 지녀야 하고, 또...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건 망상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원래 이런 몸뚱이였는지도 모르겠어요. 원래 이런 몸은 또 뭘까요, 토요일마다 이불 위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몸인 걸까요? 아니면 매일 피곤함을 걷고 있는 몸일까요? 아이고 모르겠습니다. 어렵습니다.


내일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네요. 예수님이 알기론 아마 딱 제 나이 즈음 돌아가셨는데, 그즈음 예수님도 토요일엔 이불속에 누워있고 싶었을까요? 그분은 전지전능한 분이니 피곤함 따위 초월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외려 모든 사람을 사랑한 관대함이 피곤함을 가중시켰을 것 같기도 하고요.


어쨌건 탄생은 피곤함의 첫걸음을 떼는 것 아니겠습니까? 전 세계에서 피곤함의 시작을 축하하다니 너무 불행합니다. 남 놀리는 것도 아니고. '피곤함을 겪게 된 것 축하해!' 그럼에도 그분은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할 것이니, 어휴 참으로 관대하시긴 합니다. 얼마나 이불속이 그리웠을까요. 그분은 모르긴 몰라도 저보다 훨씬 피곤하셨을 텐데 말이에요. 아마 그즈음은 뭐 상상도 할 수 없이 피곤하셨겠죠.


예수님은 뭐라고 하셨을까요?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아니면 메시아의 운명적인 피곤함을 당연히 받아들이시곤 원래 이런 몸뚱이라 하셨으려나.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무엇이 되었든 참 완벽한 언어를 사용하셨을 텐데요. 가만, 생각해보니 예수님은 불가했겠네요. 100이 0이고 0이 100인 언어였을 테니 완벽이 무슨 소용입니까. 뭐라 말씀하셨든 빈 소리와 같았겠네요. 외려 내 사정이 낫네.


예수님보다야 사정이 나으니 이제 편하게 말하겠습니다. 제 몸이 예전 같지 않아요. 원래 이런 몸뚱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피곤해서, 하루종일 잠을 잤습니다. 예수님, 메리 크리스마스. 피곤함을 겪게 된 것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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