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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nogoodnw Dec 28. 2022

d+11901

해가 뜨지 않은 한겨울 아침은 꽤나 어둑어둑하다. 어설픈 어두움을 지나는 버스들은 저마다의 빛을 낸다. 마을버스는 새빨간 전자 번호판 빛을 낸다. 커다란 초록색 몸뚱이는 짙은 회색에 숨긴 채, ‘나 여기 있소!’ 하고 빨간빛만을 뿜어낸다. 시내버스는 농도가 옅은 하얀빛을 낸다. 어설프게 번호 등이 켜진 탓인지, 아니면 빛에 대비되는 시퍼런 몸체의 보색효과인지는 몰라도, 시내버스의 빛은 아주 하얗지만은 않다.

셔틀버스는 유난히 하얀빛을 낸다. 그래봐야 조그마한 표지판에서 형광 빛을 쏘는 것뿐이지만, 그래도 그 빛은 유난히 희다. 셔틀버스는 마을버스보다도, 시내버스보다도 큰데 그 몸이 어떤 색이었는지 모르겠다. 빨강? 아니면 초록? 잘 모르겠다. 그저 그 쨍쨍한 하얀빛만 뇌리에 남아있다.

버스 정류장에서 그 하얀빛이 보이면, 설렘이 슬금슬금 찾아온다. 버스에 올라 반쯤 누운 자세로 자리를 잡고, 누군가가 말했던 ‘도라에몽 주머니’ 같은 내 패딩의 커다란 주머니에서 이어폰과 책을 꺼낸다. 출근버스는 자리가 남기에 2인용 의자를 1인용 마냥 사용한다. 전 날 술을 마셨거나, 늦게 잤다면 눈을 감는다. 책이 읽고 싶다면 이리저리 편안한 자세를 찾아 팔을 잘 고정한다. 목적지에 조금만 더 늦게 도착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는 설렘을 만끽한다.

그 하얀빛은 특별하다. 빨간빛은 안된다. 어설픈 하얀빛도 안된다. 그 시간의 유난스러운 하얀빛만이 내게 설렘이다. 요즘의 내게, 설렘은 그 어설픈 어두움 속 LED빛 하얀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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