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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nogoodnw Feb 01. 2023

음식이 맛있더라고요.

이자카야 순

여러분 제가 말이에요, 이 친구 고3 때 처음 알았거든요. 뭐 알 분은 아시다시피 전 수업시간엔 내내 자고 학교 파한 후엔 피시방에 출근 도장 찍어대던 학생인지라, 학기 초엔 이 친구랑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어요. 근데 제가 가끔 야자실에 앉아있으면 이 친구가 수학이랑 영어 문제를 가져와 묻더라고요. 본인이 뭐 목표가 있다고요. 그렇구나, 하고 공부를 알려주면서 이야기를 좀 나누어보니 뭔 요리 자격증이 몇 개씩 있는 애더라고요. 속으로 신기하다, 하며 공부를 알려줬고, 저희는 친해졌습니다. 물론 친구는 목표한 곳은 못 갔고요, 그다음 해인 2009년 4월 13일 해군에 조리병으로 입대했습니다.

그때부터 참 오랜 세월 동안 붙어 다녔습니다. 대학교 수업을 빼먹고 이 친구 집에 가 같이 누워있기도 하고, 영화도 보고, 한강도 가고, 술도 마시고, 온갖 것을 다 해보았어요. 친구는 결국 제대 후에 요리 학교에 진학해 전문적으로 요리를 배웠어요. 학점도 아주 잘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대단하다, 하면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술이나 먹자고, 항상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학점을 잘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 말한 것인데. 바보자식.

그 후로 친구는 여러 스시 전문점에서 일을 하면서 경력을 쌓았어요. 아주 유명한 호텔 주방에서 일한 적도 있고, 일본에서 오신 스시의 대가 아래서 배운 적도 있습니다. 맨날 하릴없이 오늘은 뭐 할까 하던 놈이 얼굴 보기가 어려워지더라고요. 아주 가끔, 집 가는 시간이 맞아 같이 전철을 탈 때면, 애가 아주 녹초가 되어선 밥 짓는 얘기만 주구장창 하더라고요. 그때 미스터 초밥왕이었나, 읽었던 스시 만화가 생각나서 밥 맛이 그렇게 중요하다며, 하고 맞장구치던 제가 기억납니다.

근데 얼마 후에 애가 뭘 잘못 먹었나,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겠다고 하더라고요. 스시에 달린 고급 이미지가 싫다나. 자기가 생각해 온 방식의 음식들이 있는데 그것이 일본 고전에 어쩌고 저쩌고, 여튼 지 가게를 차리겠다는 거예요. 대중적인 메뉴로 쫙 깔아다가. 뭐 요리하는 사람들이야 자기 가게 갖는 것이 최고의 꿈일 테니 군말 없이 응원했습니다. 제가 뭐 된다고 자꾸 이것저것 물어와서 딴에는 성실히 답해주었는데, 결국 돈을 벌면서 동시에 본토의 음식을 먹어보겠다고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저희는 아주 가끔 만나게 되었어요. 그래도 한국 들어올 때면 꼬박꼬박 만나서 일본은 어떻네, 돈은 얼마를 모았네, 음식은 뭘 먹어봤네 이런 얘기들을 나누곤 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술도 많이 마실 때여서, 취할 때까지 마시며 온갖 얘기 늘어놓았었죠. 나중에 내가 네 가게를 내면 투자해 주겠다는 둥 이런 류의 헛소리들이요.

여튼 친구는 파란만장한 일본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습니다. 그리고선 메뉴를 개발하더니, 자기가 어려서부터 살던 집에 떡하니 가게를 차렸어요. 혼자 인테리어도 공부해서 업자들 찾아다니며 원하는 방식으로 가게를 꾸미고, 수저 하나, 그릇 하나까지 신경 쓰며 자기의 꿈을 결국 이뤄냈습니다.

친한 친구들을 전부 불러 모아서 고사도 지내고, 자기가 만든 메뉴들을 하나하나 내놓으며 개업식도 치렀습니다. 아니 근데 맛있는 거예요. 이 인간이 저희끼리 여행을 가면 당연스레 요리 당번을 맡았었는데, 맨날 이상한 꿀꿀이 죽을 만들어와서 너 요리하는 놈 맞냐고 핀잔만 들었었거든요? 근데 요리들이 하나같이 맛있더라고요. 제가 뭐 맛있는 음식 얼마나 먹어봤겠습니까만은, 그래도 가끔은 맛있기로 유명한 음식점을 찾아다녔었거든요. 그것보다 더 맛있어!라고 말하는 건 제 자신을 속이는 일일 테지만, 이 가격에 이 정도? 하며 끄덕여질 정도의 질 좋고 맛 좋은 음식들이었습니다. 애가 고생했더라고요.

그렇게 몇 개월 영업을 해오다가, 얘가 올 초에 한 달 쉬고 일본까지 다녀오며 메뉴를 새롭게 개편해 왔습니다. 어제 갑자기 연락이 와서 시식해 줄 수 있겠냐 하길래 공짜 밥 마다하지 않는다고 하곤 가서 먹었는데, 더 맛있어졌더라고요. 제가 너무 많이 먹어치워서 오늘 점심을 굶을 정도로 맛있었습니다. 물론 뭐 막판엔 이상한 곤조를 부려서 플레이팅 가지고 저희끼리 이러쿵저러쿵 하긴 했지만, 요리사가 곤조가 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술하는 사람인데.

여튼 2월 6일에 친구 가게 '이자카야 순'이 다시 오픈합니다. 홍보 좀 해주시고, 혹여나 불광역 근처 들를 일이 생기시면, 한번 들어가 보세요. 음식이 맛있는 건 물론이고, 가게도 참 예쁩니다. 혹시 알아요? 제 이름 대면 뭐 서비스라도 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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