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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nogoodnw Feb 10. 2021

슈우사쿠의 마늘모

슈우사쿠의 마늘모(제 7의 수)

인공지능의 계산 이전에 이창호의 종반전이 있었고, 이창호의 종반전 이전에 오청원의 현대 포석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슈우사쿠의 시대가 있었다.


이세돌-알파고의 대국 이후, 그 누구도 인간의 감각이 인공지능의 계산을 뛰어넘는다 말하지 않는다. 프로 바둑 기사들은 물론, 바둑 실력 증진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들은 각자의 컴퓨터에 깔린 인공지능에게서 바둑을 배운다. 당장 인터넷 바둑만 보더라도, 어느 정도 기력이 된다 싶은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두는 것 마냥 3의 3 자리를 남발한다. 누구의 기력이 강한가는 이미 누가 인공지능의 초감각과 비슷한 수를 두는가와 동치가 된 지 오래다.


혼인보 슈우사쿠는 오청원 9단의 현대 포석이 나오기 전까지 바둑의 바이블로 불린 기사다(혹시나 당신이 '고스트 바둑왕'을 봤다면 '사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할 것이다). 간결한 모양을 추구하는 유려한 바둑을 두었으며, 특히 흑번으로는 지질 않아 '흑번 불패'라는 칭호를 갖게 되었다. 이 '흑번 불패'는 백여 년이 지나 세계 최강에 군림한 커제 9단의 '백번 불패'의 모티브가 될 정도로 바둑 역사를 관통하며 큰 충격을 주었다.
슈우사쿠의 강함은 간결한 부분 처리를 통한 선수 잡기에서 비롯되었다. 당시의 바둑은 '덤'이라는 개념이 없었기에, 흑을 잡은 측에서 계속해서 간결하게 모양을 정리하며 선수를 잡고, 큰 자리를 선점해 '선착의 효'를 살리는 방법이 필승의 수법에 가까웠다. 그리고 슈우사쿠는 모양을 간결히 정리하면서 동시에 선수를 뽑아내는 방법을 고안해냈는데, 이것이 저 유명한 '슈우사쿠의 마늘모'이다.


그러나 선착의 대가로 흑이 백에게 덤을 지불하기 시작하면서, 슈우사쿠의 수법은 점차 잊혀갔다. 애당초 마늘모라는 것이 간결한 대신 발전성이 떨어지는 수법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흑번에서 선뜻 두기에는 덤이 부담스럽다 여겼고, 결국 슈우사쿠의 마늘모는 전설 속의 기사가 즐겨 쓴, 실용성은 떨어지는 수법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최근 들어, 오히려 인공지능이 슈우사쿠의 마늘모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국 룰인 덤 6.5집은 물론이고, 중국 룰인 덤 7.5집에서도 심심찮게 슈우사쿠의 마늘모를 최선의 수로 채용하고 있다. 간결한 처리를 통해 본인의 돌을 안정시키고 큰 자리를 성큼성큼 차지하며 상대방과의 차이를 벌린다. 덕분에 최근의 인간 바둑에서는 다시 슈우사쿠의 마늘모가 유행하는 재밌는 광경이 펼쳐진다.


사실 슈우사쿠의 마늘모는 극 초반 포석 단계에서 나오는 수이기에, 이것이 절대수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주 이상한 자리에만 두지 않는다면, 이리 두건 저리 두건 결국에는 한 판의 바둑이다. 실제로 인공지능을 돌려보면, 같은 상황에서 슈우사쿠의 마늘모가 아닌 다른 자리를 선택하더라도 크게 승률 그래프가 바뀌지 않는다.


다만 아쉬운 것은, 슈우사쿠의 마늘모를 느린 수로 치부하고 완전히 버려버린 프로기사들처럼, 많은 사람들이 선택의 순간에 특정 선택지를 배제해버린다는 사실이다. 물론 인간이 가지는 정보처리능력의 한계는 우리에게 선택과 집중을 강요한다. 사실 대다수는 이렇게 얻어낸 선택에 따르는 수많은 변화도조차 따라가기 벅찰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선택과 집중이 더더욱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일지도 모른다. 사람이기에 갖는 편견, 성향, 치우침 따위는 우리가 신이 아님을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증거니까. 하지만 실제로 인간사의 단계를 끌어올린 것은, 이러한 치우친 생각이 아니라 오류로 가득 차 보였던, 비합리적 생각들이었다. 이 바보 같은 생각들은 결국 '패러다임'으로 기록되어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었고, 유구한 인간사 동안 반복되며 끊임없이 자가발전을 해냈다. 초창기 스타워즈 시리즈에 나온 전자 결재판은 애플에 의해 실제로 구현되어 우리를 스마트폰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으로 만들어버렸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설계했던 비행기는 전 세계를 일일생활권으로 만들어버렸다. 마치 구시대의 생각에 불과했던 슈우사쿠의 마늘모가 다시 최선의 수가 되어버린 것처럼.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리 두던 저리 두던 한 판의 바둑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이리 살던, 저리 살던 하나의 인생에 불과하다. 누군가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낼 것이다. 되려 치우침 없는 바보 같은 생각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실패를 맛보게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생각들을 조금은 소중히 여겨보자. 인간사는 바꾸지 못해도, 내 인생 정도는 바꿀 힘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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