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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nogoodnw Feb 11. 2021

큰 곳과 급한 곳

바둑은 상대방과 함께 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좋은 자리들을 나 혼자만 차지할 수는 없다. 따라서, 매 차례 어느 자리에 두는 것이 최선일지 고민해야만 한다. 내 차례에 큰 곳과 급한 곳 둘 중 한 곳을 택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어느 자리를 택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바둑은 집을 많이 짓는 쪽이 승리하는 게임이니까 큰 곳을 두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내 돌의 안정을 취하거나 상대방의 발전 여지를 크게 삭감할 수 있는 급한 곳을 두는 것이 맞을까?
바둑 격언에 따르면, 큰 곳과 급한 곳이 있을 때는 먼저 급한 곳을 두어야만 한다. 당장의 큰 실리에 집착하는 것보다는 내게 급한 곳을 먼저 처리하는 것이 승리에 가까이 가는 길인 셈이다. 실리에 집착하다가 상대방에게 두터움을 허용하거나, 내 돌이 크게 시달려 조금씩 손해를 보아 종반에는 도리어 뒤집을 수 없는 바둑이 되는 것은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니 위의 격언은 쉬이 납득이 간다.
하지만 AI나 바둑 프로기사의 대국을 관전할 때면 중요한 자리에서 손을 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참 정석 진행을 하다가 큰 곳을 차지해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내 돌의 사활이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큰 곳을 두어 버티는 수들을 아주 많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격언은 옛말이고, 최신의 현대 바둑에서는 격언을 종종 어기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아마 그들은 격언을 어긴 것이 아닐 것이다. 단지 '승리'라는 목적함수에 가장 부합하는 최선의 '급한 곳'을 찾아냈을 뿐이다. 정석 진행 중이더라도 형태를 마무리하는 것보다 실리로 큰 곳을 두는 것이 급했을 뿐이고, 판세가 조금 불리한 와중에 여유롭게 내 돌을 완생으로 만드는 것보다 큰 곳에 두고 버티며 옥쇄(玉碎)를 각오하는 것이 급했을 뿐이다. '하수'인 내가 보는 '급한 곳'은 부분 최적화에 급급한 '큰 곳'이었을 뿐, 전체 판세의 승률을 가장 높이는 '급한 곳'이 아닌 것이다. 중요한 것은 큰 곳보다는 급한 곳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격언을 아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이 급한 곳인지 분별해낼 줄 아는 능력이다. 이것이 기력(棋力) 일 것이고, 진정한 실력일 것이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이다. 바둑 한 판을 두듯이, 우리도 매 순간 여러 제약 하에서의 선택을 고민하며 살아간다. 다신 오지 않을 이 시간의 나 역시 달리는 버스 안에서 유튜브 영상 한 편을 볼지, 머리를 쥐어 짜내며 어설픈 글 하나를 끄적여볼지 고민하고 이 길을 선택한다. 한 수를 물릴 수 없듯이, 매 순간의 선택은 돌이킬 수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행복 극대화라는 목적함수를 충족하는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과 더 나아가 그 선택이 진실된 최선인지 알아차리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이렇게 보니, 인생이라는 것이 너무도 잔인하다. 수도 물릴 수 없는데, 미완의 인간이 끊임없이 '급한 곳'을 택해야 한다. 게다가 그 선택이 진정 최선인지 알아차리는 능력마저 갖추어야 한다. 하지만 너무 낙심하지는 말자. 한 판의 바둑을 두면서 기력이 느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니 상수의 수를 따라갈 수 없는 하수가 계속해서 농락당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자연스레 실력이 늘어난다. 사람마다 실력을 쌓는 방식과, 그것이 쌓이는 속도는 다르지만, 어찌 되었든 한 번의 인생 속에서 실력은 는다. 처음에는 느슨한 큰 곳을 차지하던 사람이라도 쌓인 실력을 토대로 이전보다 날카롭게 급한 곳을 차지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너무 낙관하지도 말자. 아무리 실력이 늘었더라도 아직 하수를 벗어나지 못했다면, 내가 택한 급한 곳은 사실 큰 곳에 불과할 것이다. 그저 나는 이전보다 나은 선택을 해낸 자기 자신에 취해 또 다른 부분 최적화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하수의 수를 두고 있는가? 당신이 선택한 그곳은 진짜 급한 곳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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