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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nogoodnw Feb 09. 2021

신년에는

어려서부터 약간의 결벽 증세가 있던 나는 새 물건을 과도하게 아끼는 경향이 있었다. 새로 안경을 맞추거나, 핸드폰을 살 때면 손때가 타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그것들을 다뤘다. 다른 사람이 만지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 자신도 항상 손을 씻고 새 물건을 만졌다. 덕분에 평소 잘 씻지도 않던 내 손에는 항상 물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새 물건은 점점 헌 것이 되어갔다. 새 물건에 오물이 묻거나, 그 물건이 바닥에 떨어질 때면 내 마음은 세상 무너진 듯 걱정으로 가득했지만, 어느샌가 헌 것이 된 물건은 내 일상 속으로 슬그머니 스며들어 당연히 내 옆에 있는, 소중한 존재로 탈바꿈되었다.


회사 동기들과 밥을 먹다가 새해 목표가 무엇인지 물으니, 한 동기가 대충 사는 것이 목표라고 답했다. 물론 그 동기는 열심히만 살던 과거에서 벗어나 힘을 뺀 채 살고 싶다는 뜻에서 그런 답을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로, 인생은 대충 살아야 한다. 자신을 새 것 마냥 너무 아끼는, 힘을 잔뜩 준 채 살아가는 사람은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이 어렵다. '나'를 아끼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매몰되어 내가 누구인지, 여러 사람들 속에서 내가 어떤 가치를 갖는지 제대로 알기 어렵다. 반면에, 새 물건이 헌 것이 되며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듯, 힘을 빼고 이리저리 치이며 살아온 인생은 어느샌가 '나'를 깨닫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 속에 슬그머니 스며들어 고유의 빛을 내는 꼭 필요한 존재로 탈바꿈된다.


새해는 좀 더 대충 사는 한 해가 되어보자. 나를 너무 소중히 여겨 썩어버리기 전에, 좀 더 부딪치고 깨져가며, 신년에는 진정한 나를 향한 한 걸음을 내디뎌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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