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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nogoodnw Mar 0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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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버스를 놓쳤다.

회사 셔틀버스는 6시 20분경 홍제역 부근에 선다. 집 앞을 지나는 마을버스를 타면 셔틀버스 정거장에 내릴 수 있다. 마을버스는 각각 5시 50분 즈음, 5시 57분 즈음, 6시 7분 즈음 집 앞 정거장을 지난다. 홍제역까지 10분 남짓 걸리니까, 5시 50분이나 5시 57분 마을버스를 타면 별 일 없이 회사 셔틀버스를 잡을 수 있다. 6시 7분 버스를 타면, 대부분의 경우에는 셔틀버스를 잡을 수 있지만, 속된 말로 재수 없으면 마을버스 앞을 달리는 셔틀버스를 볼 수 있다. ‘일찍 일어나서 5시 50분이나 5시 57분 버스를 타라’라고 하면 뭐, 할 말은 없지만, 5시 30분 너머까지 이불 위에서 늑장 부리지 않고는 몸을 일으킬 수 없으니, 논외라 하겠다.

‘재수 없음’은 다양한 일들로 구성되어 있다. 평소보다 사람들이 많이 타서 승하차 시간이 좀 더 걸린다거나, 그날 따라 유독 자주 신호에 걸린다거나, 기사 아저씨가 느긋하게 운행하시는 분이거나, 위의 일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거나. 생각해 보면 각각의 일들도 좀 더 세분화할 수 있다. 하필 그날 사람들의 오전 일정이 생겼기 때문에,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6시 7분 버스에 탔을 수 있다. 또, 왜 오전 일정이 생겼나? 하면, 각 사람마다 수많은 사연들을 생각할 수 있다. 또, (…)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결국 그 수많은 사연들의 결합이 오늘의 ‘재수 없음’을 만들어냈다 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쉽지만 받아들이는 것 말곤 아무것도 없다. 우연히, 실로 우연이냐 한다면 논의의 차원에 따라 답이 다르다 하겠지만, 발생한 사연들의 결합이 내게 재수 없음을 가져다줬을 뿐이다. ‘재수 없다 받아들이는 나의 문제이니, 그리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 따위의 뻔한 이야기는 적고 싶지 않다. 재수 없는 걸 어떡해. 수많은 사연들의 결합이 나의 머나먼 출근길을 조금 더 힘들게 만들었다. 덕분에 나는 편히 앉아 올 수 있던 그 시간을, 만원 지하철서 사람들에 낑긴 채로, 갈아탄 열차에서는 간신히 앉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책을 펼친 채로 보내게 되었다.

다만 다행인 것은, 그 어떤 원자적 사연도 내게 악의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든 우연들은 각자의 사연을 갖고 있고, 그것의 발생은 나와 무관하다. 그 결합 역시 오로지 우연에 기인한다. 재수 없게도 셔틀버스를 놓쳤지만, 세상이 나를 미워한 것은 아닌게다. 그러니까, 재수 없음은 오로지 ‘나의 재수 없음’에 불과하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 정도면 내가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받아들임’이라는 선택지를 택할 만하다. 잘게 잘게 쪼개진 무한소의 우연들이 내 주변을 흐르고, 내가 택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것을 받아들임. 그래도 무한소 그 어디에도 악의란 보이지 않고, 재수 없음은 ‘나의 재수 없음’이니 살만 하다 할 수 있겠다.

재수가 없어 셔틀버스를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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