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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nogoodnw Apr 17. 2023

D+12011

나이를 먹은 탓인가, 말하고자 하는 단어가 쉽사리 떠오르질 않는다. ‘합법적으로 농땡이 피울 수 있겠구나.’라 말하고 싶었는데, 합 뒤의 법적이란 말이 목구멍 안쪽 어딘가로 숨어버렸다. 손을 넣어보니 ‘법’ 자 대신 ‘리’ 자만 걸려 올라온다. 결국 저 말을 하지 못했다. 화장실에 가며 머릿속을 뒤적이자 그제야 ‘법’ 자가 떠올랐다.

확연한 퇴화로의 신호인가, 아니면 정보 재배치 과정 중의 일시적 혼선인가. 퇴화를 논하기엔, 나만의 착각일지 모르지만, 나는 아직 꽤 어리다. 그렇다고 정보 재배치 과정 중의 흔한 일이라 일축해 버리기엔, 삶 속에서 받아들이는 신규 정보의 양이 많지도 않을뿐더러, 혼선의 빈도도 너무 잦다.

무엇이 이 현상의 적절한 답인지는 중요치 않다. 답을 찾아봐야, ‘법’ 자를 떠올린 시원함에 조차 미치지 못할 것이다. 단어를 떠올리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나는 말을 하는 데에도, 글을 적는 데에도 이전보다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영구적이든, 일시적이든 ‘망각’에 대해 걱정해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쓰고 싶은 말은 한아름이었는데, 한 줌도 떠오르질 않는다. 나이를 먹은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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