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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nogoodnw Apr 2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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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 비트겐슈타인과 불완전성 정리

논리학에서 가장 위대한 정리를 꼽으라 한다면, 10중 9는 ‘불완전성 정리’를 꼽을 것이다. 수 백 년간 지속되어 온 완전성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부숴버린 이 파괴적인 힘은 쿠르트 괴델을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논리학자로 만들었다.

괴델의 증명은 대략 다음의 순서를 따른다. 1. 하나의 완전한 체계를 가정한 후 체계를 이루는 기호들에 숫자를 부여(괴델 수)한다. 2. 체계 내에서 재귀함수(자기 자신을 호출하는 함수)를 하나 설정한다. 3. 해당 함수식의 증명이 도출 불가능함을 보임으로써 체계 내부에서의 증명 불가능한 명제가 존재함을 증명한다.

괴델은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이었다. 수학을 기호논리학으로 치환하고자 한 러셀의 논의에서 ‘불완전성 정리’의 아이디어가 탄생했고, 일반 언어의 모형화를 추구한 비트겐슈타인의 방법론은 괴델의 그것과 매우 닮아있다. 두 불세출의 천재는,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괴델이라는 'The Greatest Of All Time’을 탄생시켰다.

그렇다면, 어째서 저 두 사람은 불완전성 정리의 증명을 통해 논리학의 'GOAT’라는 영예를 얻지 못한 걸까? 러셀은 ‘완벽한 체계로서의 수학’을 꿈꾼 사람이기에 사실 불완전성 정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실제로, 괴델의 증명 이후 러셀의 수리철학은 큰 타격을 받았으며, 수학계 난제 중 하나였던 ‘연속체 가설’이 불완전성 정리의 실례로 밝혀진 후로는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러셀 수리철학의 위대함을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비트겐슈타인의 초기 철학을 대표하는 <논리철학논고>에는 괴델의 증명을 이루는 주요한 요소들이 모두 등장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이상적 언어에는 논리공간과 좌표화의 원리(괴델 수를 부여하는 것과 유사하다)가 등장하며, 재귀함수의 처리 방식 역시 <논고>에서 분명하게 논의되고 있다(러셀의 재귀함수 처리 방식을 비판하였다). 또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 내의 논리체계가 언어 내에서는 말해질 수 없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사실상 불완전성 정리의 아이디어가 전부 구현되어 있는 것이다.

분명 비트겐슈타인은 체계 내의 논리로서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존재함(불완전성)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논리체계의 말해질 수 없음을 언급한 것으로 보아 그 아이디어가 재귀함수에서 나오는 것(그 자체가 재귀적 귀결이기에 말해질 수 없음) 역시 알고 있었음이 자명해 보인다. 그러나 그는 추가적인 언급 없이 그의 위대한 계승자를 위한 교재만을 내놓은 채 철학계를 떠나고 만다.


<논고> 제6절이 이 의문의 해답이 될 수 있다. <논고>의 아름다운 방법론과 흠잡을 곳 없어 보이는 논리 전개 구조, 그리고 그를 통한 날카로운 분석은 역사로 하여금 비트겐슈타인을 ‘논리철학자’로 분류토록 했다. 그러나 정작 비트겐슈타인에게는 그 방법론이 말 그대로 방법론에 불과했다. 비트겐슈타인은 본인 저서의 모든 내용이 그저 언어를 넘어선 상위의 가치에 도달하기 위한 사다리에 불과함을 분명하게 명시한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한 인간에게서 나왔다 믿기 어려운(물론 비트겐슈타인도 과거의 연구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 논증을 던져낼 때, 인간의 삶 그 자체를 풍요롭게 만들 가치 있는 것들이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 말한다.

결국 비트겐슈타인에게 체계의 불완전성 여부를 증명하는 작업은 불필요했다. 그는 이미 체계의 불완전성을 알고 있었으며, <논고>에서 비트겐슈타인의 결론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완벽한 논리의 인공언어가 갖는 그 한계 도출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서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길라잡이에 가깝다. 인간의 실천을 중시한 그의 후기 철학 이전에, 이미 그는 인류애로 가득 찬 본인의 ‘철학’을 완연히 드러내고 있었다. 감히 생각건대, 비트겐슈타인은 실존주의적 윤리학자라 말하는 것이, 그가 좋아할지는 모르겠으나, 타당하다.

역사상 가장 중요한 논리학자를 괴델이라 말하는 것은 무리가 없다. 그러나, 나는 비트겐슈타인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철학자’라 말하는 데에 역시 큰 무리가 없음을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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