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imnogoodnw
May 17. 2023
<악령>. 제목만큼이나 그 내용이 강렬하다. 39명의 등장인물 중 13명이 죽음을 맞는다. 벌건 느낌의 소설은 아니다. 교수형에 좀 더 가깝달까. 굳이 색을 꼽자면, 개인적으론 진한 회색이 어울린다고 본다. 죽은 인물들은 대부분 그 순간 흥건한 피를 쏟아내긴 했지만.
원제는 <Бѣсы>, ы는 러시아어의 복수형 어미라고 한다. 그러니까, 사실은 <악령들> 일 것이다. 악령에 빙의된 돼지떼는 하나도 빠짐없이 절벽만을 향해 몸을 날린다. 돼지들의 행렬 앞에는 주인공이 서있다. 개미집 앞에서 개미떼를 손가락으로 짓누르는 어린아이처럼, 주인공은 제 멋대로 돼지떼를 주무른다. 악령들은 이리저리 그 손짓에 따라 움직이지만, 결국 바다에 빠질 뿐. 바다에 빠지지 않는 것은 아무런 악의 없는 주인공뿐이다. 오롯이 악의만으로 가득 찬 주인공뿐이다.
인신(人神)이건, 신인(神人)이건, 바다에 빠지는 것은 정해진 운명이다. 아름다운 관념들이 전부 순수한 악의에서 비롯된 것임은, 세상에 진정 필연의 영역이 있는가 의문을 갖게 만든다. 도스토옙스키는 만연한 허무주의를 비난하고자 <악령>을 집필했는데, 결국 남는 것은 허무주의다. 그리고 남는 것은, 그가 원한 것처럼, 충만한 삶에 대한 종교적 찬양이다.
길이는 정보량으로, 정보량은 어지러움으로 나를 인도한다. 흩뿌려진 관념들의 진행은, 절벽을 향해 달리도록 만든다. 악령이 되었으나, 악의가 없으니 괜찮다. 악의로 가득 채웠으나, 나는 돼지떼 중 하나의 돼지일 뿐. 절벽은 나의 의지로 뛰는 것, 악령은 없다. 언젠가 이 악마의 말을 다시 읽게 될 그날을 고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