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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nogoodnw Jun 0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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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낼까? 내지 않을까?

내가 참 좋아하는 인간 A와 B는 공동의 지인을 두었다는 이유로 아는 사이가 되었다. 최근 게임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생기면서, 서로의 존재를 간신히 인지하는 수준에 머물던 둘의 사이는 꽤나 발전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속한 단체 채팅방에서는 게임 얘기뿐만 아니라 서로가 사는 얘기까지 활발히 나누게 되었다.

B에겐 어느새 퇴근 후 즐기는 몇 시간의 게임이 인생의 낙이 되어버렸다. 원하는 대로 게임이 풀리면 환호성을 지르고, 반대의 상황이 되면 입 밖으로 욕을 내뱉으며 순간에 충실했다. 게임은 어느새 B에게 필수불가결의 존재가 되어버렸다. 지난 5월 초의 연휴 하루 전 날, 게임 내에서 욕설 채팅을 했다가 일주일 간 아이디 정지를 당했을 때 B가 표한 그 울분과 공허함은, 가히 세상의 종말을 앞둔 마지막 인간의 절규에 비할 법했다.


정지 해제 후, B는 조심하고 또 조심했건만, B의 아이디 재정지는 그리 먼 미래의 일이 아니었다. A가 B의 아이디로 접속하여 게임을 하던 와중 욕설 채팅을 했고, 그로 인해 B의 아이디는 다시 정지당해버린 것이다. A는 나에게 그 사실을 먼저 알려왔고, 나는 미안함에 안절부절못하는 A의 모습과, 또다시 황금연휴를 앞두고 그 좋아하는 게임을 하지 못하는 B가 상상이 되어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헬스장에서 바벨을 들던 와중에 그 소식을 접했는데,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와 제대로 운동을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실실 웃으며 운동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던 와중, ‘B는 A에게 화를 낼까, 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아는 B는 아주 착한 사람이어서 이 정도 일로는 화를 내지 않을 듯한데, 이 전에 아이디가 정지당했을 때 B가 표한 감정을 생각하면, 화를 낼 정도의 일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의 사이가 멀다면 멀고, 어느 정도는 가깝다면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애매모호한 사이여서, 그 판단이 더더욱 어려웠다. 어느새, 나는 한 사람이 타인에게 왜, 그리고 언제 화를 내는가에 생각이 미쳐 결국 바벨을 집어던지곤 빈 벤치에 눌러앉아버렸다.


‘화’는 언제 발생하는가? ‘화’는 결핍, 혹은 부조리의 순간 발생한다. 특정 인간에게 바라는 바가 존재하고, 그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밀려드는 아쉬움, 짜증, 분노 등의 감정이 ‘화’라는 행위로 표출될 것이다. 만약 그 화가 상황이 아닌 ‘타인’을 향했다면, 그것은 분명 본인의 기대를 저버린 타인에게의 부정적 감정 표출일 것이다. 화는 불일치를 전제로 발생한다.


‘화’는 왜 발생하는가? ‘화’라는 부정적 감정 표출 행위는 인간에게 굉장히 큰 에너지 소비를 요하는 일이다. 에너지 소비 이상의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때, ‘화’를 내는 행위가 한 인간에게 정당화될 것이며, 그렇지 않은 ‘화’는 그저 본인의 수명을 깎아먹는 행위에 불과하다. ‘화’를 내지 않음으로써 사람이 얻는 것은 기대-현실 불일치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이다. 부조리한 상황이 발생했을 시, 사람은 ‘화’를 내지 않고 참는 대신 스트레스를 받거나, 혹은 부정적 감정 표출에 따르는 에너지 소모를 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다 가정한다면, 결국 누군가 ‘화’를 낸다는 것은 그에게 인내에 따른 스트레스 대비 부정적 감정 표출에 따른 에너지 소모의 비용이 더 작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위의 상황은 ‘화’를 내는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췄을 때의 이야기이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화’가 상황이 아닌 ‘타인’에 향한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나’에게 기대-현실 간 불일치가 꼭 ‘타인’의 불일치와 일치하리란 보장은 없다. 따라서, 타인에게 내는 ‘화’는 ‘부정적 감정 표출’의 그 행위 특성상 나-타자 간 관계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추가적인 분석을 위해, 관계의 지속 여부에 따라 상황을 나누어보기로 하자. 만약 나-타자 간 관계가 일회성 관계(1기간 관계를 맺은 후 terminate)라면, 관계의 악화 가능성은 ‘화’라는 행위의 고려 요소가 되지 않는다. ‘나’의 상태에만 초점을 맞춰 행동 여부가 결정되며, 위의 언급처럼 오직 스트레스와 에너지 소모 간 비용 비교만이 행위 여부 결정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나-타자 간 관계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관계의 경우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화’에 따른 관계 악화가 이후 관계에 미칠 악영향이 추가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화’를 냄에 따른 스트레스 해소의 기회비용이 ‘화’의 대상이 되는 타인과의 관계 수준에 따라 매우 크게 증가할 수 있다. 처음 언급한 A-B처럼 애매한 관계에서는 그 비용 증대가 크지 않을 수 있으나(물론 ‘나’의 존재로 인해 비용 증대는 생각보다 클 수 있다), 아주 친한 친구이거나, 부부, 부모 등 특수한 관계에서 화를 내는 행위는 아주 큰 비용을 수반할 수 있다. 관계의 지속성을 고려해보면, 화를 내는 행위는 위의 관점에서 볼 때 상당히 비합리적인 행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관계 지속에 따라 추가되는 ‘화’의 순기능 역시 존재한다. 바로 경고 신호로서의 역할이다. 관계가 지속되면 될수록, ‘경고 신호’의 중요도는 점점 높아진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역린’이 존재한다. 그 역치야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특정 분야의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자극은 사람을 참지 못하게 만든다. 따라서, 지속적인 관계에서 ‘화’를 내는 행위는 관계 지속을 위한 경고 신호로서 꼭 필요한 행위일 가능성이 높다. 단기적으로는 그 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으나, 사실은 특정 사람과의 관계 지속을 위해 내비치는 방어기제로서 ‘화’가 작용하는 것이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관계를 완전히 끝내고자 하는 것이 아닌 한 ‘화’를 내는 것은 ‘당신과의 관계를 지속하고 싶어요’라 말하는 수줍은 표현의 발로임이 틀림없다.


결국 B는 화를 냈는가? B는 화를 내지 않았다. 위에서 주저리주저리 말한 나의 공상과는 관계없이, B는 본성이 착한 사람인지라 화를 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기도 하고. 대신 A는 아이디를 정지시킨 죄로 매일 저녁 B와 함께 게임을 해야 하는 벌에 처해졌다. 둘이 함께 우당탕탕 게임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즐겁다. 혹시 게임을 못한다고 A-B 서로 화내진 않을까? 아이디를 정지시킨 건 참을 수 있어도 내 게임 망치는 너는 참을 수 없어. 아아, 저녁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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