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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nogoodnw Jul 06. 2023

빈&파리 기록 - 4

0614

빈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전 날까지의 강행군 탓인지, 아니면 시차에 슬슬 적응해서인진 모르겠지만 기차에서 충분히 오래 잤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알람에 맞춰 일어났다. 저녁 때는 파리로 넘어가야 하는 데다가, 첫 행선지인 쇤부른 궁이 꽤나 멀리 있어서 아침부터 바삐 움직여야만 했다. 사실 돌이켜보니 아침부터 바삐 움직이지 않은 날이 있었나 싶지만, 여하튼 이 날은 특히나 바빴다.

빈에서의 마지막 아침 메뉴 역시 역 앞 식당에서 파는 파니니와 아이스커피였다. 내가 원체 빵과 치즈를 좋아해서 그런지 매일 먹어도 질리질 않았다. 내 옆에 앉은 동기는 세트메뉴를 시켰는데, 토스트가 나왔길래 한 입 뺏어먹었다. 역시 한 입만이 제일 맛있는 법이지. 배를 든든히 채우곤, 쇤부른 궁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탔다.

쇤부른 궁은 거대했다. 벨베데레 궁전이나, 오후에 봤던 호프부르크 왕궁보다 훨씬 거대한 느낌이었다. 정원을 걷고 걸어도 끝이 나오질 않았다. 정원 어딘가에는 동물원도 있다는데,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어 갈 수 없다는 것이 좀 아쉬웠다. 쇤부른 궁 안에는 모차르트가 6살 때 처음으로 연주한 공간도 있었다. 어린 모차르트라니. 모차르트의 음악은 혹시 그때도 반짝반짝 빛이 났을까? 천재는 주변을 불태운다. 그 불 때문에 더 빛나는 법 일지도. 물론 모차르트의 것들은 그 자체로 별이지만.

쇤부른에서 나와, 이번 여행 내 궁극의 목적지, 비트겐슈타인 하우스로 향했다. 비트겐슈타인이 철학계를 떠나 있을 때 누나의 요청을 받아 설계에 참여한 건물. 지하철서 내려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질수록 나도 말 그대로 부풀었다. 그리고 새하얀 건물이 눈앞에 들어왔다.


비트겐슈타인에게 건물 설계에 참여할 것을 요청한 누나 그레틀은 건물을 보고, ‘신들의 쉼터’와 같이 보인다고 했다. 감히 인간이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논리학으로 지은 건물 그 자체였다. 군더더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하얗고 각진 외형은 정신병동의 이미지에 가까워 보였다. 정신병이 있지 않고서야 그런 요상한 글들을 적을 수 있나? 아마 하루 종일 <논고>의 세계를 머릿속으로 구상하다 보면, 정상에 가까운 사람도 이상한 영역에 발을 들여놓을 수밖에 없을게다.


아마 정말 신이 났던 것 같다. 동기 둘은 연신 사진을 찍어 주면서, 내가 이리도 방방 뛰어다니는 것을 처음 보았다 말했다. 내부 사진을 찍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비트겐슈타인이 제작한 흉상이 보여 도저히 사진을 찍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었다. 안 걸리고 은근슬쩍 나쁜 짓 하는 건 어렸을 때부터 잘했다. 그저 내가 눈치가 없는 건진 모르겠지만.

사진도 많이 찍고, 내부에 있는 구조물들을 하나하나 다 만져보고는, 빈에서의 마지막 목적지인 호프부르크 왕궁으로 향했다. 쇤부른, 벨베데레 궁은 누가 봐도 ‘여기가 티켓 파는 곳입니다.’하는 곳에서 티켓을 팔고 있어 입장이 아주 순조로웠는데, 도무지 호프부르크 왕궁은 무엇을 관람하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근방의 건물들을 쑤시고 다닌 결과, 엘리자벳 왕비의 거처였던 곳에 입장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벨베데레-쇤부른을 거치며 단기간 내 왕궁을 너무 많이 본 데다가, 비행기 시간이 마음속에 자꾸 걸려서 인상 깊게 남지는 않았다. 엘리자벳 왕비의 여러 사치품들과 황제 서거 이후 입었다는 새까만 드레스만 뇌리에 남았다.


빈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슈니첼이었다. 마지막은 역시 전통 음식으로 마무리해야지. 처음과 끝이 수미쌍관 구조를 가졌다. 첫날 먹었던 슈니첼은 엄청 커서 나 말고 다른 동기들은 다 조금씩 남겼었는데, 이때 먹은 슈니첼은 모두 다 싹 비워냈다. 요리에 문외한인 인간인지라 무엇이 다른 지는 당최 모르겠지만, 더 맛나다고 느꼈다. 어쩌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입맛을 돋우었는지 모르겠다. 어렸을 적 먹었던 슈니첼을 미화시킨 것처럼.

비행기 시간이 애매하여 택시를 타기로 했다. 솔직히 나 혼자 다녔으면 설마 늦겠냐, 하고는 지하철을 탔을 텐데, 돌이켜보니 만일 그랬다면 이 날 파리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 같다. 역시 다른 사람 말을 잘 들어야 해, 특히 나 같이 무지에 가득한 인간은. 택시 기사 아저씨가 우리에게 자꾸 말을 걸었다. 에스파뇰 분위기가 팍팍 나는 아저씨였는데, 한국 영화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보지도 않은 오징어게임부터 올드보이, 기생충까지 줄줄 늘어놓는데, 명예 한국인 줘도 될 법했다. 유쾌한 아저씨는 총알같이 택시를 몰아 비행기 시간에 늦지 않을까, 하는 우리의 기우를 싹 씻어줬다. 총무를 담당한 동기는 본인 마음의 짐을 덜어주었다며, 30유로 나온 택시비에 10유로를 팁으로 얹어 아저씨에게 건네어주었다.

빈 처음 들어올 때, 비행기에서 공항으로 들어가는 통로에서 여기가 빈이구나! 했었는데, 똑같은 뷰를 보며 파리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려니 마음 한편이 씁쓸해졌다. 말 그대로, 눈에 닿는 모든 곳, 모든 것이 취향 저격인 도시였다. 다음번에는 좀 더 널널한 일정으로, 음악도 즐기고, 도시도 좀 더 거닐며 지내보고 싶다. 멀지 않은 미래에 다시 올게, 안녕!

파리에 도착해서는 샤를 드 골 공항의 압도적인 사이즈에 위축되었다. 빈 국제공항은 정말 작았는데, 너무 크게 대조가 되어 기억에 남았다. 수속을 마치고 조금 기다리니 파리 시내로 가는 공항버스가 왔다. OPERA라는 지하철 역을 가는 버스였다.

다음 날 아침 루브르 박물관을 가기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남는 김에 루브르 입장 정보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어디선가 인터넷 사전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입장이 불가하다는 정보를 보게 되었다. 코로나 시대 이후 그렇게 바뀌었다나. 나 루브르 가야 하는데, 거기 가려고 파리 오자고 한 건데, 만 반복하며, 혹시 어딘가 최신의 ‘현장 입장도 가능합니다’ 하는 정보가 있는지 뒤져보았다. 정확하게 정리된 정보를 찾을 수 없어, 소위 ‘오픈런’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렇게 우리의 4번째 아침 역시 강행군이 확정되었다.

OPERA역에서 숙소까지는 지하철로 약 5 정거장 정도 거리였다. 도착하자마자 탄 파리 지하철은 우리나라 1호선보다도 시설이 훨씬 열악했는데, 나중에 보니 우리가 특히 나쁜 열차를 탔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파리는 도시가 더럽다는데, 에 매몰되어 지하철도 더럽구나 이상을 생각해내지 못했던 것 같다.

파리 숙소는 5층에 있는 아주 좁은 방이었다. 동일한 금액이었는데, 빈의 숙소와 비교하면 1/3 정도 크기밖에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엘리베이터도 없어서, 5층까지 캐리어를 들고 올라갔는데, 계단도 수직의 형태가 아니라 나선의 형태가 가미되어 있어서 까딱 캐리어 끌어안은 채로 추락하기 제격으로 보였다.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게 더 문제겠는데, 했지만, 사실 너무 힘들어서 흐릿한 인상일 뿐이었다.

짐을 대강 풀고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숙소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레스토랑인데, 오리고기 스테이크가 유명한 곳이었다. 발이 슬슬 한계에 와서, 걸어가는 길이 너무 힘들었지만, 음식이 참 맛있었다. 프랑스 맥주가 있길래 시켜봤는데, 시원하다! 말고 딱히 특별한 점은 없었다. 물론 그 시원함만으로 모든 것을 압도했지만. 와인도 글라스로 두 잔 마셨는데, 오리고기랑 아주 잘 어우러져 맛났다. 맛난 것을 먹어서 그런가, 아니면 술에 취해서 그런가,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파리의 첫날 밤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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