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mnogoodnw Jul 11. 2023

빈&파리 기록 - 6

0616

마지막 날에는 베르사유 궁 – 지베르니 투어가 예정되어 있었다. 8시에 우리를 태우고 다닐 밴이 숙소 앞에 오기로 했는데, 그 덕분에 마지막 날까지 6시 반 기상이었다. 캐리어를 들고 계단 내려갈 수 있을까 걱정했었는데, 생각보단 순조롭게 1층에 도착했다. 스쿼트를 열심히 해놓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르사유 궁은 파리 근교에 있어서, 1시간 좀 넘게 차를 타고 가야 했다. 투어 진행하시는 분(사실 투어라기엔 시간 맞춰 차 태워주시는 게 전부여서 투어라 이름을 붙이기도 뭐 하다)께서 프랑스에 15년 사신 한국인이어서, 프랑스에서의 삶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가령 살아보니 한국이 살기엔 제일 좋은 나라라든가 하는. 조금 듣다가,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베르사유 궁은 정원과 궁전 오픈 시간이 달라서, 정원을 먼저 본 후 오픈 시간에 맞춰 궁전 내부를 보기로 했다. 정원이 무지막지하게 컸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베르사유 궁을 갖고 싶어 쇤부른을 지었다 했는데, 정원 사이즈가 그에 비견할 만했다. 쇤부른 궁 정원보다 컸던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이 많으니 찬찬히 보자, 하고는 정말 천천히 걸으며 풍경을 음미했다. 아마 이번 여행 중 가장 느린 속도로 걸었던 것 같다. 정원 안을 돌아다니다가 샌드위치 가게를 하나 발견해서 간단히 요기도 했다.

정원을 2시간 정도 느긋이 보고는 궁전 입장 시간이 되어 궁으로 향했다. 유명하고도 유명한 문화유산이라 그런지, 오픈 시간에 맞춰 갔는데도 줄이 꽤 길었다. 궁을 순서대로 관람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아서, 화살표만 따라가면 전부 볼 수 있었다. 베르사유 궁전도 루브르, 오르셰처럼 18년 만에 와본 것인데, 내 기억 속의 베르사유 궁전과는 너무 다르게 생겨서 꽤나 놀랐다. 특히 가장 유명한 거울의 방은 다른 곳을 보곤 착각했나 싶을 정도로 내 기억 속 장소와는 달랐다. 분명 바닥부터 천장까지 전부 거울로 가득 찬 곳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분명 아름답지만 그것과는 다른 이미지의 방이었다. 뭐, 이 버전도 아름답긴 매한가지였다.

궁에서는 다른 것보다도 천장화가 참 기억에 남았다. 벽면에 그림을 그려도 그리 아름답게 그리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용케도 천장에 그 많은 그림을 남겨놓았다. 방마다 대강의 설명도가 있긴 했는데, 설명은 보지 않고 고개를 꺾은 채 그림만 천천히 훑어봤다. 한눈에 전부 담을 수가 없어서, 한 부분, 한 부분 담아다가 내 머리 안에서 맞췄다. 퍼즐 맞추기는 언제나 즐거운 법.

베르사유 궁 투어를 마치곤 지베르니 마을 안의 모네의 정원으로 향했다. 지베르니는 여행 가기 전부터 동생부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추천해 줬던 장소여서, 맨 처음 여행 계획을 짤 때부터 코스에 포함시켰다. 베르사유에서도 한참 가야 해서, 여행 내내 모자랐던 잠을 청했다.


모네의 정원은 꽃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살면서 그만큼 단위 면적 당 꽃이 많이 피어 있는 곳에 가 본 적이 있나 싶다. 예뻤다. 여행 내내 홀로 힘든 소리 한 번 없이 걸어 다녀서 혹시 기계인 가 싶었던 동기가 그 아름다움에 손으로 꽃들을 하나하나 훑으며 지나갔다. 감정이 있는 개체였군. 나도 그 동기 따라 꽃잎도 만져보고, 정원의 풀들도 손 끝으로 느껴보았다.

정원을 지나 들어선 모네의 집 안에는 그림이 많았다. 모네는 같은 그림을 굉장히 많이 그렸다고 하는데, 오르셰 박물관에서 본 것과 똑같은 그림이 집안 곳곳에 걸려있었다. 오르셰 박물관 투어 때 가이드님께서 모네는 일본 판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씀하셨는데, 일본 판화로만 가득한 방도 따로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큰 정원에 이 만한 사이즈의 집이라니, 이 아저씨는 아주 부자였던 것 같다.

집에서 나와서는, 모네의 대표적 연작인 ‘수련’의 실제 모델이 된 장소에 갔다. 되게 큰 연못을 빙 둘러 길이 나 있었는데, 정원처럼 꽃들이 가득했다. ‘수련’의 지점에 도착하자, 그림처럼, 못을 가로지르는 커브 형의 다리가 있었고, 연꽃이 군데군데 피어있었다. 그림 같았다. 모네 정도의 재능 있는 사람이 이런 풍경을 보고 지낸다는 가정 하에, 세기의 명작들을 뽑아내는 것은 어쩌면 함수의 영역일지도.

지베르니 투어를 마치고서는 고흐 마을로 알려진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향했다. 비행기가 약 2시간 연착되어 시간이 남아 추가 요금을 지불하고 고흐 마을에 가기로 했다. 처음에 여행 계획을 짤 때도 일정에 넣고 싶었지만 까딱하다간 하루 더 파리에 묵어야 할 것 같아 아쉬움을 머금고 배제했었는데, 말 그대로 천운이 따랐다. 마침 지베르니에서 공항 가는 길에 있어 들르기도 아주 좋았다.


지베르니가 모네로 먹고사는 마을이라면,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고흐로 먹고사는 마을이었다. 마을 곳곳이 고흐로 가득했다. 정작 고흐는 이 마을에서 70일가량 묵다가 자살했는데. 고흐 그림의 모델이 된 장소 앞에 이정표들이 세워져 있어, 그림과 비교하기가 아주 편했다. 고흐가 생을 마감했다는 라부어 여관에 들어가 고흐의 방을 구경했다. 모네의 큰 집과는 정 반대로, 이 사람 방은 참 좁디좁았다. 지금은 고흐 작품이 더 비쌀 것 같은데. 죽어서 더 높은 이름을 남기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싶다. 전 날 보았던 <별이 빛나는 밤에>가 문득 떠올랐다.

마을 위쪽으로 올라가니, 넓은 들판과 <까마귀 나는 밀밭>의 이정표가 있었다. 그림과 꼭 같은 곳에 갈림길이 있었다. 100년도 넘는 세월을 어찌 이리 가만히 있었을까. 까마귀는 없긴 했지만, 그림 속의 풍경 그대로 내 눈에 비쳤다. 밀밭 옆 공동묘지에, 고흐와 동생 테오의 묘가 나란히 있었다. 누가 추모하고 갔는지, 묘 위에는 간소한 꽃 묶음 하나가 놓여있었다. 가난했던 이 사람의 생애 때문인지, 아니면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별이 빛나는 밤에> 때문인지,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겠지만 마음속으로 기도를 드렸다. 그렇게, 고흐가 마지막이라 더 마음에 들었던,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 끝났다.

매거진의 이전글 빈&파리 기록 - 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