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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nogoodnw Jan 02. 2024

삶을 원하는 한 해 되세요.

2023년은 제게 참으로 기억에 남을 만한 해였습니다. 대단한 성취를 이룬 것은 아니지만, 신년이면 서로에게 으레 하는 인사처럼 ‘원하는 바대로 살았던’ 한 해였어요. 달성하기에 꽤나 어려울 것이라 여겼던 신년 목표들도 대부분 이루었고, 생각지 못한 행운도 따라주었지요. 누군가 ‘인생을 살며 가장 기억에 남는 해가 언제입니까?’ 묻는다면, 서슴없이 2023년이었노라 말할 겝니다.

‘매 순간 목표 지향적으로 살았더니 행운마저 깃들었습니다.’ 따위의 상투적인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그래봐야 나. ‘올해는 꼭 열심히 살아야지!’ 따위로 인간이 바뀔 것이면, 지금까지 쌓은 나의 게으름이 아깝습니다. 레이 커즈와일의 미래 마냥 머리 어딘가에 칩을 박고 프로그램을 실행시키는 것이 아닌 이상, 나태는 언제까지나 나를 대표하는 아이덴티티 일 겁니다.

어쨌거나 방향감각을 지닌 채 한 해를 살아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기껏해야 남이 사용할 산소나 축내던, 말 그대로 살아지니 살던 제가, 이제야 내 삶이 흘러가는 곳을 희미하게나마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대단한 곳도 아니거니와, 남들은 애저녁에 자기만의 이정표를 찾았을 겝니다만, 뭐, 그것이 중한 것은 아니겠지요.

중한 것은, 저도 이제야 남들 틈에 간신히 끼었다는 것이지요. 어려서부터 우리가 목표를 좇아 열심히 사는 인생을 미덕으로 삼도록 교육받은 것은, 그것이 역사를 거슬러 사람들 사이에서 정당화된 까닭 아닐까요. 우리도 그 정당화를 물려주는 과정을 거치고 있고요. 바둑 마냥 이리 살아도, 저리 살아도 하나의 인생이라곤 하지만, 누구나 본인의 인생을 빛내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 빛나는 인생들이 모였기에, 우리가 이렇게나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겠지요.

그런데 말이죠, 대체 그러면 그놈의 정당화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분명히 이 체계 내부에 그 정당화를 정당화시켰던 논리가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면 또 그 메타-정당화도 마찬가지로 메타-메타-정당화를 가질 것이고, 또, 메타-메타-메타-정당화가, 아이고, 재귀함수를 맞닥뜨렸네요. 게다가 정당화라는 것의 속성을 생각해 보면, 나 혼자서는 성립하지 않으니, 나와 당신, 그리고 당신들의 합의가 있어야만 하네요. 너무 변수가 많은 방정식이라 슈퍼컴퓨터로도 풀 수 없을 듯합니다.

이 방법으론 풀 수 없으니, 관점을 한 번 뒤집어볼까요? 글 솜씨가 모자라 답을 벌써 언급해 버렸네요. 생각해 보세요, 정당화건, 메타-정당화건, 메타-메타-…-정당화건, 결국 이 체계의 내부에 존재해야 합니다. 이 체계에 존재한다는 것은, 정당화의 굴레가 결국 이 체계를 이루는 기본 규칙들의 위에 서있다는 말이지요. 이 체계를 이루는 기본 규칙은, 우리 모두 너무나도 잘 알지만 그렇기에 인지하지 못하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은 그 사실에서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만 사는 것도 아니고, 너만 사는 것도 아니고, 우리 모두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저는 당신께 감사하다 전하겠습니다.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내 세계의 수많은 기둥 중 하나를 담당하고 계셔요. 당신이 없다고 제 세계가 무너지진 않겠습니다만, 그 모습은 지금의 내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에 불과하겠지요. 기껏 이런 아가페적인 이야기를 해놓고는 유아론으로 돌아오는 것이 우스울 수 있겠지만, 저도 당신 세계의 기둥을 맡고 있을 테니 이 정도는 이해 부탁드립니다. 내 세상이 있어야 세상이 있는 것 아니겠어요?

2024년은 삶을 원하는 한 해 되세요. 나를 위해서, 당신을 위해서. 서로를 한 번 위해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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