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차이로 응답하다.

by imnogoodnw

인공지능은 누구에게나 너그럽다. 너나 할 것 없이 어설픈 질문 하나쯤 던져도, 그것은 어김없이 제법 그럴듯한 대답을 내놓는다. 글쓰기의 세련됨이나 엑셀 몇 줄짜리 재주 따위로는 이제 그다지 우쭐해질 수 없는 시대가 된 듯하다. 차이는 수렴하고, 반복만이 발산한다. 남는 것은, 비슷함의 프랙탈 구조다.


그러나 비슷함은 언제나 차이를 전제조건으로 지닌다. 차이는 결코 0으로 수렴할 수 없다. 반복이 거듭될수록, 감춰져 있던 차이는 어김없이 틈을 드러낸다. 어긋남은 점차 누적되고, 마침내 비슷함은 그 자체로 균열을 품게 된다. 닮음은 끝내, 나란한 차이들이 만들어낸 구조적 어긋남에 지나지 않는다.


어설픈 질문에도 인공지능은 기꺼이 대답을 준다. 다만, 그 대답이 닿는 자리는 언제나 다르다. 겉보기엔 유사한 물음처럼 보여도, 그 미세한 비틀림이 응답의 결을 바꾸고, 그로부터 틀어지는 세계 역시 제각각이다. 어떤 말도 같은 결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질문을 고스란히 반사한다. 누구에게나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듯 보이지만, 그 표면에 맺히는 상은 비추는 이의 체계에 따라 다르게 흔들린다. 투명하지만 동일하지 않고, 똑같아 보이지만 같은 적이 없다. 답은 언제나 우리 앞에 놓여 있지만, 그 답을 세계로 엮어내는 힘은 오롯이 사람의 몫이다.


기술이 평준화를 이루는 시대일수록, 인간의 내면은 더 큰 불균형 속으로 이동한다. 사유의 힘, 고르는 눈, 미묘한 맥락을 감지하는 촉—이 모든 것이 이제는 수치화되지 않는 차이를 만들어낸다. 누구나 쓸 수 있는 도구이지만, 누구나 그 도구로 같은 집을 짓는 것은 아니다.


질문은 체계의 그림자이고, 응답은 그 체계가 품은 결의 반사이다. 세계를 바꾸는 일은 더 나은 답을 요구하기보다, 더 정제된 질문을 품는 쪽에 가까울 것이다. 스스로를 의심하고, 틈을 돌아보고, 말의 뼈대를 다듬는 행위 속에서만—겨우, 다음 세계가 열린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감사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