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생존자의 절박한 자애
선생님, 저 정말 선생님 없이도 괜찮겠지요?
2023년 7월 12일부터 약 25회기 진행한 심리상담이 2024년 3월 7일 '잠정적' 종결되었습니다. 이전 힘들었던 문제들에 꽤나 단단해졌습니다. 또한, 일이 바빠져 왕복 2시간 반 거리의 상담소를 방문하기 어려웠습니다. 잠정적임을 강조한 것은 안식처가 있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언제든 힘들 때면 달려가 도움을 요청할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니까요.
어린아이가 보행기를 떠나야만 걸음마를 배우고 달릴 수 있듯, 저 또한 다음장으로 넘어가야 할 때가 왔음을 느낍니다. 동시에 너무나 두렵습니다. 구명조끼 없이 수영장에 첫 발을 디디는 순간인 것 같습니다. 여태 해왔듯이만 하면 되는 것을 알지만 무섭습니다.
종결 상담 50분 전 상담소에 일찍 도착했습니다. 상담 선생님께 편지를 쓰기 위해서였습니다. 대기실에 앉았는데, 공교롭게도 상담 선생님을 처음 뵈었던 장소였습니다.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수미상관 같았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편지를 써 내려갔습니다. 눈물의 의미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상담 선생님과 사람 간의 정이 들어 헤어지는 것에 슬픈 눈물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앞으로 펼쳐질 다음장이 두렵고 불안해 흐르는 눈물이었습니다.
종결 상담이 시작됐고, 자리에 앉자마자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절 보신 상담 선생님께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50분의 상담이 종료되었을 무렵 신기하게도 사용 중이던 갑 티슈가 동이 났습니다. 마지막 상담에 마지막 티슈를 사용하다니, 의미부여를 하게 됐습니다. 이곳에서의 경험으로 많은 것들을 흘려보내고 채웠습니다.
제 인생은 선생님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뉘어요.
말씀드리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살고자 이곳의 문을 두드린 것도 본인이고, 이야기를 풀어낸 것도 본인이에요. 그렇기에 앞으로도 스스로가 잘해 나아갈 사람이에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도, 자려 침대에 누웠을 때에도 참 많이 울었습니다. 초등학생 때 잘 따랐던 미술학원 원장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분을 정말 좋아했는데, 하루아침에 엄마가 그 학원을 정리했습니다. 몇 날 며칠 그분을 그리워하며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부모님 외 의지하고 따랐던 어른이 생긴 경험은 그때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심리상담센터에 근무했던 경험이 있는 만큼, 내담자와 상담자는 사적으로 연결되어선 안 됨을 잘 압니다. 상담 전, 후 모두요. 때문에 종결 상담 이후로 기약 없는 이별임을 알기에 정말 많이 슬펐습니다. 제가 힘들어져 다시 상담소를 찾지 않는 이상 뵙기 어려운 상황이니까요. 아이러니하지요. 뵙고 싶어도 뵐 날이 없는 것이 좋은 존재라니요.
다음 주면 프리랜서로서의 삶이 더욱 명확해집니다. 처음 시작하는 일이 동시에 5개 늘어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첫 출근은 긴장되고 떨리겠지요. 게다가 동시에 5곳의 일이 시작되는 것은 비단 용기 있는 선택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저는 마음을 조금 더 다잡아야만 할 것이고요. 몸도 일을 시작하는 것을 귀신같이 아는지,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전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시기보다는 훨씬 적은 양이지만, 최근과 비교하면 확실히 많은 양이 빠지고 있습니다. 부정해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긴 하는 것이겠지요. '무엇인가 시작되었구나. 어떤 결과가 나올지 두고 보자.'생각합니다.
두려움에 떠는 '아이솜'을 자꾸만 도전의 상황에 빠트리는 '단단솜'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민하게 제 상태를 파악해 언제든지 구해낼 "보호솜"이 있습니다. 상담을 진행하며 깨달았으니까요. '해보고, 아님 말고.'
강다솜이란 책. '세명의 솜'이 손을 포개어 다음장으로 넘깁니다. 이를 응원의 눈빛으로 바라봐주는 독자들이 있기에 마음 놓고 걷고, 달리고, 넘어집니다. 어느 날 젖은 솜처럼 몸과 마음이 무거워질 때면 손을 내밀에 도움청할 사람들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