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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Mar 04. 2024

좋아 보이는 가정폭력생존자

가정폭력생존자의 절박한 자애

"다솜선생님은 좋아 보여요. 잘 지내는 것 같아요. 그냥, 별 굴곡 없이 평온한 것 같아서요."


직장 동료 선생님께 들은 말입니다.

허허 웃으며 말했습니다.


"뭘요~ 다들 사는 것처럼 살아요."


그저 평탄하고 맑은 사람. 어쨌든 좋아 보인다니까 좋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단단하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보이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스스로도 점점 더 좋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되어감을 느껴요.


예전 힘들었던 시기의 저와 지금의 제가 극명히 다른 부분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것. 심리상담을 진행하며 마음속 복잡하게 얽혀있던 응어리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를 찾았습니다. 그것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게 됐어요. 두 번째는 해결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하는 능력을 키운 것. 이것을 깨우치자 많은 부정적 생각들이 연쇄적으로 해결됐어요.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이제야 알게 된 기분이었습니다.

 




전문가의 도움. 상황에 따라 병원이 적합할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마음 수련과 명상, 요가로 회복이 될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경우엔 심리상담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번 주제는 혹자에겐 서운하게 읽힐 수도 있겠습니다. 예전 제가 그랬듯이요. 


"네가 힘든 일을 지인들에게 말해 위로를 얻을 순 있다. 그 이상은 어렵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대부분 그들도 해결책을 모른다. 네게 줄 수 있는 해결책이 그들에겐 없다.

감기에 걸려 약이 필요한 네가 병원을 찾지 않고 그들만 찾는다면, 그들이 줄 수 있는 것은 따듯한 담요와 초콜릿정도이다. 반복적으로 '나 힘들어'라 얘기할수록 그들은 '나 감기 걸려서 아파'를 의사 말고 자꾸만 본인들에게 토로하는 기분을 느낀다. '그렇게 아프면 병원을 가보지...'란 생각이 들며 도움을 줄 수 없는 대상의 널 어려워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넌 서운함을 느낄 수 있다.

정리하자면, 전문가가 아닌 지인에게 고민을 토로하는 것은 위로 그 이상의 큰 도움은 안된다.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 가 듯 전문 기관을 찾아라. 적합한 처방과 도움을 받아라."


학부생 때 따르던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입니다. 가정폭력의 기억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시작한 순간은 학부 졸업반 때였습니다. 기숙사 생활을 했었기에, 졸업을 한 뒤엔 본가에서 출퇴근을 해야 하는 게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사형선고일을 받은 듯 하루하루 흐를수록 온몸의 혈관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이에 대해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내려놓고 싶었습니다. 졸업전시 주제를 '아빠에 대한 애증'으로 잡고 가정폭력에 대해 처음 타인에게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작은 위의 말씀을 나눠주신 교수님이셨습니다. 상의드리고 싶은 내용은 많은데, 분명 눈물부터 흐를게 뻔했습니다. 편지로 드리고 싶었던 말씀을 전해드리며 느리지만 뜨거운 작업을 진행 해나아 갔습니다. 두어 달쯤 지났을까. 하루는 교수님께선 교내 학생상담센터 이용을 추천하셨습니다. 그리고 개인 면담이 끝난 뒤 모든 학생을 불러 모으시곤


"사람이 아프면 병원을 찾아야 하는 것이란다. 나 감기에 걸려서 아파, 아파.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토로만 하는 것은 옳지 않아. 주변 사람들도 처음에나 '어떻게 해, 괜찮니?'걱정할 수 있지. 해결해 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아프다 얘기하면 듣는 사람들도 점점 지치고, 아픈 사람도 정작 필요한 도움, 약을 받지 못하게 된단다. 


마음의 병 또한 마찬가지야. 해결책을 줄 수 없는 주변사람들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당사자와 모두에게 좋아. 만약 힘든 부분이 있다면 상담사를 찾아가는 것을 적극 추천해.


우울증 환자들에게 제일 처음 처방되는 것이 충분한 수면, 산책, 하늘보기라더라.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스스로의 하루를 돌보는 것을 시작으로 큰 변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란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슬펐습니다. 제 얘기를 거절하시는 것으로 느껴졌거든요. 엄마가 제게 가정폭력 경험을 숨기라며 얘기한 '네가 아픈 부분을 얘기하더라도 그 누구도 호의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궁금해하지도 않고 오히려 약점 삼아들것이다. 네 얼굴에 침 뱉기이니 숨겨라'가 떠올라 심장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그날이 벌써 6년 전이네요. 당시엔 아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맞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심리상담을 받을수록 제가 느끼는 감정이 어떤 뿌리에서 시작된 것인지 파악하는 힘이 길러졌습니다. 이 불안이 어디서, 왜 왔는가. 통찰력을 키워갈수록 현재 마주한 상황을 과거 기억과 연관시켜 과한 불안을 느끼는 경우가 많음을 알게 됐습니다. 동시에 현재의 상황에 과거의 기억까지 끌어내 과한 불안을 느끼지 않아도 됨을 알아갔어요. 어느 지점에 현재 상황과 과거의 감정을 혼돈하는지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정말 중요했는데, 불안해하지 않아도 될 부분이 점점 늘어갔어요. 


두 번째, 원인과 형태 모르게 부유하던 우울과 두려움. 심리상담을 진행하며 이들을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코어문제점을 파악했습니다. 가정폭력에서 연쇄된 불안정애착, 자존감 하락. 두 가지가 시야를 가려 세상을 어둡게만 보도록 했습니다. 이를 깨닫고선 먼저 사랑을 얘기했고 스스로를 믿었습니다. 사실은 처음엔 그런 '척'부터 했습니다. 

"난 나를 사랑해! 난 멋있어. 그리고 나만큼 너 또한 사랑해!"

사람들에게 반복해서 말하며 스스로에게도 들려주었습니다. 스스로를 설득했습니다. 난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요. 어느 순간 너무나 여린 저를 지켜내는 또 다른 단단한 내가 생겨났습니다. 어느 순간, 정말로요.


걱정을 줄이는 힘이 생겨났어요. 상황을 탓하기보단 제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과 아닌 부분을 구분했어요. '해결할 수 있나? 그럼 해결 하자! 해결할 수 없나? 그럼 생각할 필요 없다!'공식을 알게 되니 연쇄적으로 고민할 일이 사라졌어요. 이 이론대로면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으니 후회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때 이랬어야 했는데.'란 생각은 현재 상황을 더욱 비관적으로 보게 할 뿐임을 깨달았어요. '당시엔 이렇게 될 줄 몰랐으니 최선의 결정이었지!' 생각하며 현재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게 됐습니다. 낙담하지 않고 해결책을 찾아 행동하는 시간이 단축될수록 일상은 더욱 긍정적으로 바뀌어갔습니다. 그럴수록 자신감도 생겨났습니다. '해보고. 아님 말고. 그렇게 큰일 안나.'란 생각이 절 보호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 괴로워하지 않고 현재를 살 수 있게 됐어요. 심리상담을 진행하지 않고 주변 몇 없는 사람들에게만 힘듦을 토로했다면 이뤄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점점 더 사람들을 어려워했을지도 모릅니다. 더욱 깊은 구덩이 속으로 빠져들었을지도요.


때문에 주변에 마음의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는 것이 어떨지 추천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보듬어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편안해지길 진심으로 응원하는 마음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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