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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Mar 27. 2024

섬유유연제와 기억

친애하는 당신에게

요즘 들어 완연한 봄날씨가 되었다. 오랜만에 봄 옷을 꺼내 입었다. 작년 이맘때쯤 썼던 섬유유연제 냄새가 났다. 어딘가 익숙하며 기분 좋은 낯선 냄새.


향수보단 섬유유연제 냄새를 좋아한다. 그토록 좋아하는 냄새이건만. 마트에서 시향 했을 땐 설렐 만큼 좋던 향이어도, 며칠을 쓰다 보면 금세 익숙해져 별 다른 냄새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일상의 냄새가 되었다고 할까. 매번 옷을 입을 때마다 좋은 냄새를 느끼고 싶어 3-4개의 섬유유연제를 동시에 구매해 돌아가며 써보는 것이 버킷리스트가 되었다. 그렇게 현재를 매번 새롭게, 설레게 살아가고 싶다. 익숙하게 지나치지 않고 싶다.


요즘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함께 수업을 하며 웃고 떠들 때면 그들 또래였던 옛날의 내가 생각난다. 나도 이 시기에 이런 생각했었는데. 이런 기분이었는데. 그 당시의 내게 나던 냄새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난 언제 이렇게 훅 커버린 것일까. 그들의 섬유유연제 냄새는 포근하다.

오늘은 대학교 내 위치한 초등학교로 출근하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꺼낸 봄 옷을 입고. 오전 업무를 마치고 학교 근처로 이동하여 카페에서 가벼운 식사를 했다. 대학생들의 대화소리가 들렸다. 입시, 재수, 추가합격, 상향지원, 하향지원, 대기번호. 한때 현실이었으나 과거가 된 단어들에 생경했다. 내 옷의 낯설고 익숙한 섬유유연제 냄새와 단어들에 기분이 몽글해졌다. 당시엔 그저 익숙한 현실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 당시를 추억하게 된 내가 서있다.


얼마 전 새 섬유유연제를 구입했다. 앞으로 입게 될 옷들에 입혀질 냄새. 시간이 흐른 뒤엔 지금은 느끼지 못하는 낯섦이 있을 것이다. 훗날의 나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까.


당장 고민인 부분들도 결국 지나갈 것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기억들을 좋게만 기억하는 것처럼. 그러니 그저 하루를 걸으면 된다. 마음 놓고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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