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불신/집착형 불안정 애착

가정폭력 생존자의 절박한 자애

by 가람

성인이 된 지금, 심리검사 결과가 '타인 불신 or 타인 의존(집착)형 불안정 애착'이 나왔다. 타인을 향한 양가적 마음을 적나라히 들켰다. 근본적 관계, 가족에서부터 내 사람은 없었다. 살면서 온전한 내편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내 사람을 너무나 갖고 싶어 한 타인 의존(집착)형 불안정 애착이 형성됐다. 동시에 그 부재 때문에 '넌 언젠가 날 떠날 수 있겠지. 날 배신하고 아프게 할 수 있겠지.'란 마음의 벽을 치게 됐다. 이런 방어기제로 타인 불신형 불안정 애착도 형성된 것이다. 심리상담을 진행하며 가정폭력에 대한 얘기만 다룰 줄 알았다. 상담을 받을수록 가정 외에서도 발견되는 결핍들이 내 마음에 겹겹이 쌓여있음을 알게 됐다. 가정폭력에 의한 연쇄적 결핍이었다.


상담사 선생님께 내 마음을 꺼내 보일 때면 시간이 많이 지난 일임에도 언제나 눈물이 흐른다. 과거의 결핍을 얘기하다 보면 그에 연결된 현재의 결핍도 찾아진다.

"친했던, 친한 사람들을 떠올리면 무슨 생각이 들어요?"

"보고 싶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당신들과 멀어지고 싶지 않다고요. 전 아직도 당신들과 함께했던 추억 속에 살고 있다고."

"왜 보고 싶어요?"

"그들에게 잊히고 싶지 않아요. 전 그들과의 추억을 다 기억하고 살고 있는데. 평생 기억하고 살아갈 텐데. 그들은 벌써 제가 흐릿해져 가요. 그때가 정말 즐거웠다고 얘기하고 싶은데."

"보고 싶다고 말해봤나요?"

"아니요, 잘 못해요. 만나자고도 말을 잘 못 꺼내겠어요. 한 친구한테 몇 번을 만나자고 말할 때마다 바빠서 나중에 만나자 했어요. 절 만나기 싫은 건가 싶어서 힘들었어요. 그 사람은 정말 시간이 안 된 걸 수 있는데. 그 후에 다시 만나기도 했었는데도요. 친구들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정말 보고 싶어요. 지금도 생각나는 사람이 셋이나 있어요. 동시에 상처받을까 두려워요. 그들과 멀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어요."

사람들에게 연락을 잘 못하며 산지 꽤 됐다. 그들이 잊힌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과 함께했던 나날들이 꿈에 나오기도 했다. 보고 싶다. 중, 고등학생 때 하루의 절반 이상을 함께하던 그들이 이젠 사회 일원으로 성장했다. 떨어져 지낸 시간이 쌓인 시간만큼 내가 모르는 그들의 삶도 두터워졌다. 서로의 의미도 달라졌다. 그들과 내 삶이 다른 궤도를 돌다 우연한 주기로 잠시 함께한 행성 같은 존재임을 마주하기가 두려웠다. 언제나 그들을 그리워하고 함께하고 싶은데. 오랫동안 자주 보며 지내고 싶단 생각, 그렇지 못한 현실이 부딪혔다.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오히려 아쉬움이 커졌다. 너무 힘들어지기 싫어 그들을 멀리했다.


그럼에도 종종 먼저 연락을 해주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자주 연락을 하지 못해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주어 고맙다고 했다. 진심이다. 그들의 존재가 내겐 그들은 모를 만큼 큰 힘이 된다.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맺다 보니 내 주변 사람들에겐 언제나 진심을 꺼내 보인다. 많은 상처 투성이라 꺼내놓기 두려운 진심들이지만. 그들의 존재는 내 진심에 쌓인 먼지들을 털어내 초라하게 어여삐 빛나는 온기를 느끼는 힘을 가지게 해 줬다. 그들에게 언제나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조금 더 편하게 연락을 할 수 있게 될 때. 그날이 멀진 않았음이 느껴진다.

이전 06화흉터를 꺼내 보이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