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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Oct 10. 2023

가정폭력 가해자를 사랑합니다.2

가정폭력 생존자의 절박한 자애

"내가 너희들 다 지켜줄 거니까 너넨 걱정하지 마. 내가 너네 다 지켜줄 거니까."

그때 깨달았다. 아빠에 대한 감정이 증오가 아닌 애증임을.


아빠에 대한 감정은 양가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사람. 동시에 마음 깊숙이 어딘가에선 사랑하는 사람. 졸업전시로 가정폭력 경험과 아빠에 대한 감정을 고민하던 때였다. 아빠가 내게 저질렀던 행위들을 나열하며 분노하던 새벽. 음주를 전혀 하지 못하는 아빠가 사업 얘기로 긴 술자리 끝에 귀가했다. 초점 없는 눈, 택시에서 고되게 잠들었던 것인지 헝클어진 머리, 하얗게 질린 얼굴, 입술, 그와 대조적으로 새빨갰던 입술 경계, 까실하게 자란 수염, 지친 발걸음, 들숨과 날숨이 섞인 목소리. 불과 몇 초 전까지 아빠를 증오하며 고발성 작품을 기획 중이던 나였는데, 아빠의 흐릿한 모습을 보자 마음이 아팠다. 가족을 위해 자기 자신을 불태우고 귀가한 사람. 언제나 불타오르고 있는 사람. 아빠의 손을 꼭 잡았다.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셨어..."

난 말끝을 흐리며 통곡했다. 그 모습을 보고 동생도 눈물을 흘렸다.

"아냐 억지로 마신 거 아냐. 거래처 사람이 기싸움으로 폭탄주를 말아주잖아. 기싸움하느라 내가 마신 거야."

그리곤 아빠도 눈물을 흘렸다. 처음 본 아빠의 눈물이었다.

"내가 너희들 다 지켜줄 거니까 너넨 걱정하지 마. 내가 너네 다 지켜줄 거니까."

엄마도 울었다. 그렇게 우리 넷은 통곡의 새벽을 보냈다. 그때 깨달았다. 아빠에 대한 감정이 증오가 아닌 애증임을.


졸업전시를 구체화하며 아빠에 대한 감정을 무엇으로 정의해야 할지 어려웠던 터였는데, 이 경험으로 정리가 됐다. 애증, 폭력, 자애. 이 3가지가 내 졸업전시 주제가 됐다.

첫 번째로 작업화 한 내용은 5살 때 경험한 첫 폭력이었다. 어린이집 옆 자리 친구가 선물로 준 연필을 도둑질을 해온 것으로 오해받고 머리채를 잡힌 날. 난생처음 겪은 폭언과 폭력. 그날 내 세상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아빠가 발로 내리찍어 두 동강 난 키티 책상이 매우 잔인하게 각인됐다. 이 폭력을 무너지는 듯 쌓아 올린 의자 더미에 그 당시 사용했던 키티 책상과 유사한 어린이용 책상을 올려두는 것으로 작업화했다.

두 번째로 작업화 한 내용은 가정의 가식이었다. 내 가정은 외부에서 바라보면 너무나 화목했다. 그 시선이 닿지 않는 부분은 감히 예상할 수 없이 추악했다. 이것을 조명과 벽 글씨를 활용해 담았다. 조명은 사람의 시선을 대변했다.


조명이 밝게 닿는 영역엔

"하하하하. 호호호호. 그럼요, 우리 딸이 얼마나 예쁜지요. 아하하하 그러셨습니까. 우리 딸은 아직도 제게 뽀뽀를 해요. 얼마나 의젓한지. 그럼요, 우리 딸한테 정말 고맙죠. 우리 딸 최고!"

등 외부인에게 보인 평화롭고 화목한 대화를 얇고 흐린 글씨로 썼다. 밝은 부분일수록 더욱 흐리고 얇은 글씨로. 사람들의 시선이 닿을수록 내 부모는 꾸며낸 모습을 보였으니까.

어두워진 곳으로 갈수록 크고 두껍고 거친 글씨. 그들이 내게 쏟아냈던 폭언을 담았다.

"너 진짜 별거 아니니까 까불지 말라고. 아주 죽여버리는 수가 있다. 내가 네 인생 하나 망치는 것 일도 아닌 거 알지. 어디 얼굴 망가트려서 고개도 못 들게 해 줄까? 미친년. 개새끼. 병신새끼. 네 직장에 깽판 좀 쳐줘? 일도 못하게 해 볼까? 이 자식이 보자 보자 하니까. 너... 내가 생각 좀 해볼 테니 그리 알아라."

그들에게 소리치고 싶었던, 날마다 꿈에서 그들에게 포효했던 내 마음들도 담았다.

"내 몸 만지지 마. 때리지 마. 소리 지르지 마. 반성해. 사과해. 잊지 마."

당시 공부 중이었던 헌법 중

'제36조 1항.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

란 내용도 담았다. 너무나 말장난 같았다. 이 집에 내 존엄과 성평등 따윈 없다. 게다가 국가가 내 안위안정을 어떤 식으로 보장해 줬는가.

세 번째로 작품화 한 내용은 이 집에서 벗어나겠다는 나의 의지였다. 생의 99% 이상을 어둡고 찬 땅속에 유충으로 지내는 매미처럼. 결국 누구보다 뜨거운 계절에 가장 밝게 하늘을 날아오르리란 믿음으로 그 세월을 견뎌냈을 매미처럼. 행복해질 것이란 의지와 믿음으로 버텨냈다. 이러한 마음을 빛 한가운데, 작품들 중 가장 밝은 곳에 매미 유충 허물을 배치해 담아냈다.

네 번째로 작업화 한 내용은 아빠에 대한 애증이었다. 작업의 전체 면적을 흑과 백이 아닌 회색으로 칠했다. 작품 입구벽면을 평행하게 두지 않고 한쪽면을 기울어지게 두었다. 입구 밑 깔린 러그 또한 긴장감 있는 각도로 배치했다. 그러한 입구에 사람 키 보다 훨씬 큰 크기의 사랑 애'愛'를 배치했다. 아빠를 향한 사랑을 스스로 경계하게 되는 마음. 아빠 또한 날 사랑함을 알지만 인정하는 순간 무너질 것 같은 마음. 차라리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모질게 각인시켜야 덜 괴로운 심정. 그럼에도 자꾸만 존재가 느껴지는 사랑.

애증을 책으로 만들어 함께 전시했다. '사랑니'란 책이다.

치과에 방문한 주인공은 사랑니가 매복해 누워 자랐고 썩은 부분도 있다며 발치를 권유받는다. 결국 결정하지 못하고 귀가한다. 발치하지 않으면 고통이 커질 것을 알지만 고민하는 주인공.

'괜찮을까? 평생을 함께 지내 온 아이인데 뽑아도 될까? 너무 아프진 않을까? 나을 아프게 하긴 했지만. 날 위해 언제나 컴컴한 곳에서 일해 준 아이인데. 그리고 이 아이가 내게 들어와 있는 깊이는 정말 깊은걸.'

이내 결심한다.

'아니야, 나를 괴롭게 하는 존재잖아. 날 위해서라도 이젠 보내줘야겠어.'

치과에 재방문해 발치 진행을 한다. 마취를 하고 잇몸을 절개한다. 발치가 끝난 잇몸엔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발치 후 안내사항을 들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주인공.

'뽑았구나.'

"혹시 저 아이 제가 데리고 가도 되나요?"

발치한 사랑니를 보며 얘기한다.

"아유 안 돼요, 저건 규칙상 저희가 처치를..."

거절당하고 귀가한다. 주인공은 한참이고 입을 벌려 잇몸을 확인한다.

'구멍 참 크네'

 

마지막으로 작업화 한 내용은 자애였다. 8살 때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로버트 먼치)' 책을 소리 내 읽고 녹음했었다. 이를 어린이용 8칸 공책에 받아 적었다. 어린아이가 쓴 것처럼 왼손으로. 그리고 녹음된 목소리를 반복재생시켰다. 어린 내가 어눌하게 책을 읽는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많은 감정이 교차한다.

'이 어린아이에게 사랑을 주고 싶다. 이땐 몰랐지 내가 외롭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되리란 걸. 안쓰럽다.'

이 마음을 담아내고자 8칸 공책들 중 가장 마지막장엔 아무것도 쓰지 않은 공백으로 배치했다.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책의 소개는 이러하다.

'아이들 가슴에 일생동안 간직될 한결같은 어머니의 사랑을 전하고 있는 그림책. 어머니는 아기가 말썽을 부려도, 말을 듣지 않아도, 그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어도 가만히 노래를 불러줍니다. [너를 사랑해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어떤 일이 닥쳐도 내가 살아 있는 한 너는 늘 나의 귀여운 아기]'(교보문고 제공정보)


8살 때 내게도 엄마가 이 책을 읽어주곤 했다. 사랑받고 있음을 느꼈다. 엄마의 음성으로 책 속 노래 가사를 들었던 기억이 생생해 책 내용을 참조하지 않아도 가사를 적을 수 있었다. 지금은 그러한 엄마가 내겐 없다. 아빠 또한 없다. 책 또한 언젠가 사라졌다.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들려오는 어린 내 목소리. 아직도 마음속 자라지 못한 채 남아있는 어린 내게, 어린 내가 사랑의 책을 읽어준다. 사랑의 노랠 불러준다. 부모가 내게 사랑을 거두었으니 스스로 사랑하고 보듬어준다.


여담으로, 몇 달 전 본가에 가니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던 그 책이 다시 거실 소파에 나와있었다. 동생에게 그것에 대해 물었다.

"아 그거, 엄마가 서점 갔다가 내가 생각났다고 사다 줬어."

내 동생에겐 아직 그런 엄마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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