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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Nov 14. 2023

우리 사랑할까요

가정폭력생존자의 절박한 자애

하루는 결혼과 출산에 대해 의견을 물어온 사람이 있었다. 비출산주의라면 결혼하는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현대인 사이 비혼, 비출산의 화두가 붉어진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비출산주의지만 결혼은 좋다고 대답했다. 아이를 싫어하는지 질문을 받았다. 그렇다기보단, 모든 아이들은 사랑을 듬뿍 받으며 충분히 넘어지고 웃고 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나를 만나지 않기 위해. 윗세대에서 가한 폭력이 아빠를 통해 내게 고스란히 전해졌던 것처럼. 상처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


부모에게 사랑을 배우지 못한 채 성인이 된 나. 스스로 서툰 자애를 가르친 어른아이. 지금은 단단하고 깊은 사람이 됐지만, 아직 무르고 곯은 부분이 많음을 잘 안다. 아이에게 나눠줄 수 있는 사랑은 내게 아직 없다. 스스로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어야 아이도 사랑할 수 있으니까. 상처에 새 살이 차오르기까지 걸릴 시간이 짧지 않을 것 또한 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자면, 내 나이 만 29세. 노산 이전에 내 내면이 안정화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요즘 기술이 좋아져 노산도 문제없다는 의견도 들었다. 추가적인 답변을 했다.


모든 아이들은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엔 아직 행복하지 못한 아이들이 많다. 현재의 목표는 온전한 사람이 되어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되는 것. 그다음 목표는 아직 행복하지 못한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될 것 같다. 출산이 아닌 입양을 고려할 듯하다. 물론 배우자와 상의를 마친 뒤.




스스로의 결핍을 마음의 장애라 칭한다. 이를 충분히 다독이고 나면,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스스로를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정말 힘들었던 상태에서 지금의 상태까지 끌어올리는 것에도 많은 자애의 힘이 작용했기에. 마음이 더욱 평평해지면 이 힘을, 사랑을 타인에게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언제나 사람들에게 의지 했던 나였기에, 그들처럼 누군가에게 버팀목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뿌리 깊은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고 그들을 지탱해주고 싶었다. 나부터 단단히 사랑해야 가능했기에,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날 더 아껴줄 수 있는지, 사랑할 수 있는지 좇았다. 그 모습은 절박하며 비참해 보이기도, 용맹한 투사 같기도 했다. 주변에선 내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기도 했고 응원을 보내주기도 했다. 요즘 들어선 내가 되고 싶었던 사람에 가까워진 것이 느껴진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눠준 사랑의 언어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소개할 때 '두 살 강다솜' 키워드 외 '사회운동가'가 추가됐다. 내 아픔을 먼저 꺼내 보이는 것은 '저 또한 당신과 같은 생존자입니다. 지금은 행복하게 잘 지내요. 만약 당신도 아픔의 기억을 털어놓고 싶어 진다면 언제든 절 찾아주세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란 뜻이다.


나와 같은 또 다른 생존자들에게 기억을 털어놓을 용기를 나누는 것. 서로의 존재가 힘이 될 시작점이 되어주는 것.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것. 나로 인해 시작될 작은 연대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할 것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스스로를 사회운동가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전파하는 사회운동가.


여느 때처럼 스스로 가정폭력생존자임을 밝히고 담담히 상처와 극복에 대해 꺼내보인 순간이었다. 긴 얘기를 듣고 난 뒤 몇 사람들이 날 찾아왔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각자의 깊은 순간들을 조심스레 꺼내주었다. 상처를 타인에게 보여주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고 아팠을지. 꺼내보이기 걱정스럽고 떨리는 동시에, 이를 함께 나눌 사람을 찾고 싶은 마음. 그 무게가 어떠한지 잘 알기에. 내 앞에 울고 있는 이 사람들의 마음을 껴안아주었다. 이들이 나와의 대화로 짐을 덜어내고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날 응시했을 때 행복을 느꼈다. 그들에게 해주는 말들은 아직 내게 남아있는 내면아이에게 스스로 들려주는 말이기도 했다. 때문에 그들과 대화를 나눌수록 내 마음 또한 안온해졌다. 그들을 아낄수록 나 또한 행복해졌다. 서로를 사랑할수록 스스로를 사랑하게 됐다.


요즘 들어 주변에서 나를 표현하는 말들은 ‘질문을 하지 않아도 본인의 얘기를 하고 싶게 만드는 사람. 감정과 마음의 대화를 이끌어가는 힘이 있는 사람. 이 사람이라면 아픔을 꺼내보여도 안전하겠구나 싶은 사람. 상대방의 이야기를 소중하고 진중히 듣는 사람. 알아차리지 못했던 마음을, 그 근원지를 생각해 보도록 하는 사람. 대화를 할수록 스스로를 위하는 방법과 행복에 대해 생각하게 사람.’이다. 편안히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안전한 공간 같은 사람. 대화할수록 행복해지는 사람. 내가 되고 싶은 사람에 오늘도 한 발자국 가까워진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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