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로 산다는것
저녁 식탁에서 내가 물었다.
"오늘 수업은 무엇에 관한 것이었소?"
아내는 요즈음 교회에서 배우고 있는 '비폭력 대화'에 대해 짤막하게 이야기한 후,
"오늘 선생님이 시를 한 편 가져와 읽어주는데 참 감동적이라... 당신도 어디 한 번 들어보실라우?"
하고는 과제물 프린트를 들고 와서 아래와 같은 시를 낭송하기 시작했다.
만나서 편한 사람
- 용혜원 –
그대를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그대를 만나 얼굴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대는 내 삶에 잔잔히 사랑이 흐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대를 기다리고만 있어도 좋고 만나면 오랫동안 같이 속삭이고만 싶습니다
마주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고
영화를 보아도 좋고
한잔의 커피에도 행복해지고
거리를 같이 걸어도 편한 사람입니다
멀리 있어도 가까이 있는 듯 느껴지고
가까이 있어도 부담을 주지 않고
언제나 힘이 되어주고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잔잔한 웃음을 짓게 하고
만나면 편안한 마음에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를 잊도록 즐겁게 만들어 줍니다
그대는 순하고 착해 내 남은 사랑을 다 쏟아 사랑하고픈 사람
나의 소중한 것을 이루게 해 주기에 만나면 만날수록 편안합니다
그대는 내 삶에 잔잔한 정겨움이 흐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여보, 어때요? 얼마나 멋져요? 가슴 설레고.."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시를!"
"아니, 말이 안되다니???"
"한 번 생각해보셔. 이 사람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될라카믄 내가 우째야 되겠소?
마음 따뜻~해야지,
편안~해야지,
오랫동안 속삭이고 싶을라카믄 그야말로 로맨티스트가 돼야지,
보고만 있어도 좋을라카믄 얼굴도 바쳐줘야지,
부담 안 줘야 되지,
힘 있어야지...
또 뭐라캤노?
걱정 없이 만들어 준다꼬? 그랄라믄 돈도 많아야지,
한도 끝도 없이 이야기 이어갈라카믄 아는 거는 또 얼마나 많아야 하겠노?
또 그러면서 웃길라카믄 유머감각도 뛰어나야지,
시간을 잊을 만큼 즐겁게 해줄라믄 엔터테이너까지 돼야지.
어데 그것만 있나?
순해야지, 착해야지, 정다워야지.
세상에 이런 사람이 어데 있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야 시인이니까 이런 시를 지을 수 있는 것 아니겠소?"
"물론 시라는 것이 다큐가 아니라 이상향을 그리지.
하지만, 시고 소설이고 간에 뭐 그럴듯하니 있을 수 있는 상황을 그려야 독자들의 공감을 얻는 법인데
이건 아예 있으래야 있을 수 없는 사람을 그리고 앉았으니, 무슨 판타지 소설도 아니고 몽상도 아니고."
"당신 말 듣고 보니 그러기도 하네요. 마~ 그건 그렇다 치고, 위에 든 것 중 당신이 제일 안 된다 싶은 것이 무어요?"
"그건 내가 대답할 문제가 아니라 당신이 말해야 안 되것나?"
"그렇지요? 안 그래도 선생님이 각자 자기가 무엇이 가장 부족한지 말해보라 할 때 내가 그랬지요. 그건 상대방이 해야 할 말 아니냐고!"
"그래, 당신 생각에는 내가 제일 부족한 것이 무어요?"
"글쎄, 당신이 내한테 오랫동안 마~ㄱ 속삭인 기억은 잘 없는 것 보니 로멘티스트나 무드파하고는 거리가 먼 것 같네요."
"이 양반이 지금 무슨 소리하노? 밖에 나가믄 다들 내보고 로맨티스트라 카는데…. 당신이 못 받아주니 그런 소리하지."
"왜 꼭 내가 무드 잡아야 되는데요?"
"그기 아이고, 오래간만에 내가 무드 한번 팍 잡을라카믄 마~~ 당신이 찬물 탁 안 끼얹었나? 우리,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자!"
"……."
"그런데, 이 시를 지은이가 어느 목사님이라 하네요."
"그러면 그렇지~!! 이제 알겠네. 이 양반이 묘사한 대상은 바로 하나님인 거네. 음~ 그라믄 말이 된다.
어디, 다시 한번 읽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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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 딱 맞아떨어지네!. 고럼! 이거이 사람이 아니지,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