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담은 그릇
제자(레지던트 4년차) 결혼식이 있어 해운대 센텀에 있는 한 결혼식장을 찾았다.
그곳은 작년 이맘때쯤 이 건물에서 있었던 레지던트 결혼식에 왔다가 주차장에 차 댈 곳이 없어 되돌아가면서 이노무 예식장에서 하는 결혼식에는 다시는 안 온다고 마음먹은 건물이다.
전자 청첩장을 받자, 처음엔 과를 떠난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데 굳이 레지던트 결혼식에까지 참석할 필요가 있겠나? 싶어 그냥 부조나 보낼까 생각했다가 그 제자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남아있어 꼭 얼굴 보고 축하해 주고 싶고, 또한 그리운 과원들도 보고 싶어 결혼식에 참석하기로 했다.
예식장에 도착하여 차를 대고 올라가 식장 입구에서 제자 및 혼주(婚主)와 인사를 나누면서 그의 부모님께 '훌륭한 아들 잘 길러주어 감사하다'라는 덕담을 남기고 예식 시작 10분 전에 식장에 들어갔는데 이미 자리가 거의 다 찼다.
어디에 앉을까 난감해하면서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마침 바로 옆에 있던 최 교수를 발견하고 그가 앉아있던 테이블에 동석했다.
그 자리는 식장 제일 뒤쪽 오른쪽 벽면에 붙은 테이블이었는데 식이 시작하자 뒤에 서 있던 하객들이 앞으로 몰리면서 통로를 막고 섰고, 그로 인해 우리 테이블에선 식장 무대가 아예 안 보이게 되었다.
그러자, 보다 못한 최 교수가 그들에게 한마디 해서 몇몇이 뒤로 빠지는 바람에 겨우 신랑 신부 모습을 먼발치에서나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또다시 다른 사람들이 앞을 가로막고 선다.
이제 무대 보기는 포기하고 말만 듣기로 했다.
그런데 사회자 마이크에 '에코'를 왜 그렇게나 많이 넣어놨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들을 수가 없다.
여기서 매일 치르는 일이 예식일진대, 지금 현장에는 음향 담당자가 분명 나와있을 텐데, 마이크 소리 들어보면 모르겠나? 엠프의 에코 볼륨 조금만 줄이면 될 것을. 지금 뭐 하고 있노? 참말로 한심하다.
주례사가 시작되었다. 주례는 과장인 정교수가 맡았다. 주례 용 마이크는 그나마 말소리가 보다 또렷이 들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뒤에 서 있는 하객들의 잡담 소리에 주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아이고~ 마, 말아라!'
이제 다 포기하고 결혼식 끝나기만 기다렸다.
식이 끝나고 난 후 단체 사진 한 장 찍고, 내려가서 밥 먹고, 영 똥 밟은 기분으로 돌아왔다.
나의 단상(斷想)
신랑이 의사다. 신부도 같은 병원 타과(他科) 레지던트다. 명색이 의사들 결혼식이다.
그래서, 여기에 온 젊은 하객들은 아마도 대부분 의사일 것이다.
그런데,
복도를 점령하고 서 있으면 뒷좌석에 앉아있는 손님들에게 어떤 민폐를 끼칠 것인지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다. 뒤에 서서 떠들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방해가 되는지에 대해서도 아무 생각이 없다.
적어도 의사라면 의사로서의 최소한의 품격은 갖추어야 할 것 아닌가!
그걸 떠나서라도, 가까운 사람의 결혼을 축하해 주러 온 하객(賀客)이라면 품격까지는 아니더라도 하객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할 것 아닌가?
문제는 이런 일이 비단 이 결혼식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내 아들 결혼식 때도 그랬다.
주례 없이 거행된 예식에서 신랑 아버지인 내가 양가 대표로서 축사 겸 주례사를 했는데 뒤에 서 있는 하객들 떠드는 소리가 연단에서 마이크에 대고 말하고 있는 내 귀에까지 들려 신경에 거슬릴 정도였으니, 더 이상 말해 무엇하리오?
이제 결혼식이라 칭하는 자리에는 다시는 안 가련다. 앞으로 청첩장 보내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