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 선생님
교장 선생님은 키가 자그마하고 똥똥하게 생긴 분으로 사나이다운 호탕함과 넉넉한 웃음과 너그러운 인품을 갖춘 분이셨다.
당시 어린 중학생에게는 하늘 같았던 교장 선생님에 대한 추억이 이렇게 오랫동안 남아있는 것은 위에서 기술한 특징에다 그분의 18번 노래 때문이다.
선생님은 평소 보리밥 예찬론자(禮讚論者)였다.
전교생이 함께 소풍 가는 날, 장기자랑 시간이 되어 교장 선생님을 불러내면 그분은 항상 같은 노래만 불렀다.
선생님은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단순하고도 경쾌한 멜로디의 군가 같은 곡에다 자신이 직접 가사를 붙인 '보리밥 찬가'를 주먹을 불끈 진 오른손을 아래위로 흔들어 가며 씩씩하게 불러댔다.
<보리밥 찬가>
(제1절) “보리밥 잘 먹는 사람 신체 건강하고 보리밥 못 먹는 사람 신체 약하다.”
(제2절) “방구 잘 뀌는 사람 신체 건강하고 방구 못 뀌는 사람 신체 약하다.”
(이 사진은 할리우드 첩보영화에도 등장한 적 있는 일본 Minolta 사의 초소형 포켓용 카메라로 찍은 것이다)
회고록이 불러온 친구
나는 나의 기억이 더 이상 사라지기 전에 내가 살아온 인생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수년 전부터 블로그에 회고록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나의 글을 접하게 된 중학교 적 친구 한 명이 연락을 해 왔다.
그는 나와 중·고등학교 동기로서 같은 반을 한 적도 있는 친한 친구였는데 졸업 후 전혀 소식을 모르다가 50년 만에 연락을 취해온 것이다. 그것도 일본에서.
말이 쉬워 그렇지, 50년이라면 반세기(半世紀)에 해당하는 긴 시간이다.
그동안 친구는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떻게 변했을까? 너무나 궁금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여러 회사에 다니다가 뒤늦게 신대원(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목사가 되었고, 일본 선교사로 파송되어 간 지는 10년이 넘었단다.
그 까불이 친구가 목사님이 되었다니!
학생 때 알던 친구의 이미지와 너무나 다른 사람이 되어있는 데다 목소리마저 완전히 영감 목소리로 바뀐 그가 처음엔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말투는 옛날 그대로라, 그 말투로 같은 추억을 공유하며 웃고 아쉬워하다 보니 우리 둘의 모습이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빠른 속도로 젊어져 가다가 어느새 중학생 때의 모습으로 바뀌어 그때 그 모습의 그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내가 물었다.
“야, 니는 목소리가 완전히 변했네. 도무지 옛날 목소리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야! 나는 옛날 목소리 좀 남아있나?”
“그래, 니는 좀 남아있는 것 같다.”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동안 각자 지내온 사정, 학창 시절의 옛 추억을 더듬어가다가 중학교 때 교장 선생님 이야기에 이르자 그가 말했다.
“아이고, 오 교장은 우리한테 공부 열심히 하란 말, 한 번도 안 했다 아이가! 맨날 건강하라는 소리만 했지. 반면에 우리 고등학교 때 정 교장은 말만 했다 하믄 공부 열심히 하란 소리였고.ㅋㅋ”
“야~, 나는 그 사실은 전혀 기억이 안 나는데, 니는 우째 그래 기억력이 좋노?”
“무슨 소리 하노? 나는 니 글을 보면서, '쟈는 우째 저래 기억력이 좋노?' 하면서 감탄을 금치 못하는데!”
“그러면 하나 물어보자. 우리 중학교 때 소풍 가서 교장 선생님이 부르던 ‘보리밥 찬가’ 가사는 기억나나?”
“그거는 안 나는데….”
그랬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했어도 기억에 담는 것은 서로 달랐다.
그리고 그 다르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서로 다른 기억을 통해 각자의 공백을 메워줄 수 있으니 말이다.
40분을 넘긴 친구와의 긴 통화가 끝난 후 책장에서 중학교 앨범을 끄집어내어 다시 한번 들추어 보았더니 지난번엔 무심코 지나쳤던 교장 선생님의 신조(信條)가 눈에 확 들어왔다.
“건강하고 참되고 부지런 하자”
역시 건강이 제일 앞에 나왔다.
그리고 친구의 말대로 그 어록(語錄)에 공부란 단어는 없었다.
이 문장 속에 들어있는 단어 하나하나를 떼내어 곱씹어본다.
그리고 그 절제된 단어에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 내용의 살을 붙여본다.
'건강'
첫째, 건강한 몸이 있어야 뭐라도 할 수 있다.
'참'
둘째, 참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한다.
'부지런'
셋째, 건강한 몸과 참된 마음으로 무얼 하든지 부지런히 하자.
중학생 아이들에게 이 이상의 가르침이 또 있을까?
우리 사회 어린이들의 비극
며칠 전,
퇴근길에 같은 라인에 사는 한 초등학생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큰 가방을 둘러맨 그 딸아이에게 학교에서 이제 돌아오냐고 물었다.
"아니요. 학교 수업 마치고 과외 공부 두 군데 갔다 오는 길이에요."
그 말이 내 가슴에 "쿵" 하며 애처로이 메아리치는 동안
아이의 얼굴 위에 교장 선생님의 얼굴이 오버랩되어왔다.
어제저녁 식사 후,
넷플릭스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제9화 '피리 부는 사나이' 편을 봤더니 그 편의 주제가 바로 이런 것 아닌가!
그 드라마의 작가는 이 에피소드를 통해 현재 우리 사회가 어린이들을 얼마나 공부로 학대하고 있는지에 대해 통렬히 비판했다.
단 몇 시간만이라도 애들을 공부에서 해방시켜 함께 놀아주고자 한 학원 원장 아들은 어린이 납치범으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
검사와 변호사 간에 몇 번의 공방전이 벌어진 후 마지막 순서로 피의자 최후진술 시간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혐의를 모두 인정한 후, 변호사의 도움으로 방청석에 나와 있던 함께 놀았던 아이들을 향해 그날 그들이 함께 외치며 즐거워했던 세 마디 구호를 외친다.
"어린이는 지금 당장 즐겁게 놀아야 한다."
"어린이는 지금 당장 건강해야 한다."
"어린이는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한다."
이 사회가 납치범으로 규정한 범인이 구호를 외칠 때마다. 인질 피해자로 낙인찍힌 아이들은 큰 소리로 따라 하며 행복하기 이를 데 없는 표정을 지었고 그 극을 보고 있던 나에게는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나 비장하게 들렸다.
이 얼마나 당연한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 어린이들은 이 세 가지 기본권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누리는 게 있는가?
누가 우리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었나?
바로 이 사회의 어른들이다.
어린이의 바람과 그들의 행복 따위는 아예 안중에도 없는 출세지향주의 사회풍토가 어린아이들을 방과 후까지 학원가로 내몰고 공부의 노예로 만든 것이다.
우리 때도 입시는 있었다. 아니, 지금보다 더 했다. 왜? 그때는 중학교부터 입학시험을 치르고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생애 최초의 입시 전선에서 장렬히 전사하여, 2차로 -육군 형무소와 운동장을 나누어 쓰는- 한 신생중학교에 들어와 그 교장 선생님을 만났다.
그런 학교가 자리를 잡고 이름을 알리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학생들을 좋은 고등학교에 많이 보내야 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중학교를 고입 전문 학원으로 만드는 것을 거부하고 학생들에게 건강하라고, 참되라고, 부지런하라고 가르치셨다.
어떤 것이 참교육일까?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을까?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내가 초등학교 교장이라면? --> 문지원 작가처럼 말하겠다.
"즐겁게 놀고, 건강하고, 행복하여라."
내가 중학교 교장이라면? --> 오원덕 선생님처럼 말하겠다.
"건강하고, 참되고, 부지런하자."
내가 고등학교 교장이라면? --> 정사용 선생님 말씀에 두 마디 더 보태겠다.
"열심히 공부하고, 바른 가치관을 확립하고, 좋은 친구 많이 사귀어라."
내가 대학 총장이라면? -->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꿈을 크게 꾸어라. 그리고 그 꿈을 위해 죽도록 공부하여라."